에델바이스 [27]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cafe.daum.net/love1hart1)
#27
#내가 소년을 처음 만난 날.
그래...
그 날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난 날. 골목 어귀에서 다급하게 내 차로 뛰어든 소년.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지만 이미 소년은 내 차에 부딪혀 저만큼 튕겨나간 후였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동생의 이름만 줄곧 외치던 녀석.
"아저씨...내 동생 찾아 주세요...이름은 남희요...남희구요."
남희?
그래. 피투성이가 된 채, 작은 입에서 웅얼거리고 있던 이름은 분명히 남희란 이름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백미러로 유심히 아이를 관찰하던 난,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지저분한 소년이 누구보다 맑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 당시 우리 부부 사이엔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다.
아내의 불임이었다.
그렇게 7시간의 대 수술이 끝나고, 그 아이와 대면했을 때는 이미 모든 기억을 잃은 후였다. 차에 부딪힌 머리가 원인이었다.
"아저씨는...누구예요?"
소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때 난 문득, 이 아이에게 욕심이 생겼다. 맑은 눈을 가진 아이.
그리고 내 뒤를 맡겨도 될 든든한 재목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소년.
그래서 결심했다.
"...네 아빠란다."
“아빠?”
“그래, 네 이름은 박현중이야.”
“…박현중?”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부터 넌 내 아들임을. G화학의 뒤를 잇게 해주겠다고.
그 길로 난 가까운 고아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녀석과 녀석의 친동생의 이야기.
소년의 본명은 ‘유지희’이고, 그렇게 찾던 동생 ‘유남희’는 일주일 전부터 행방불명 이란다.
그렇게 뛰쳐나온 건,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였었다 보다.
그래, 십년이 지나고…그렇게 삼년이 더 흐른 지금도 기억 나.
아주 생생하게.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남희라는 이름이.
그리고 운명처럼, 내가 녀석의 동생을 만난 곳은, 미국 G그룹의 본부 하층부였다. 그 누구보다 싸늘한 눈빛으로 화염을 일으키던 소녀. 아니, 인간병기 G-you.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아이는 내 아들이 찾던 13년전 동생이다.’
부모는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했던가. 난 쟌 회장에게서 서류를 건네 받기 훨씬 전부터 그녀가 현중이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병기라는 것도. 그래서 애써 숨기려 했다. 스파이를 붙여서라도 내 아들은 그 아이를 만나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사랑을 한다.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는 금기의 사랑을.
난 말려야 했다. 그들의 남매 이상의 정으로 번지기 전에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내 아들에게서 그녀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에델, 내 말 들리나?”
“…”
“현중이와 만나지 말아다오. 그는 네 오빠야!”
“…싫다.”
쟌 회장의 연락을 받고 급히 본사로 향한 나였다.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서 난 지유라는 아이가 갇혀있는 전자파 실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지유는 내가 박현중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난 세차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인간 병기가 되어서 네 오빠를 만나겠다는 건가?”
“아니야…”
“…”
“오빠가 아니야!”
처음으로 난 인간병기의 눈물을 보았다. 얼마나 울어댄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지유의 두 눈.
울음 섞인 목소리가 온 벽에 울릴 정도로 그녀는 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그래, 네 오빠가 아니야. 이젠 내 아들이다. 너와의 기억은 모두 잃었어.”
“…박현중은 박현중이다.”
“…”
“내 오빠만…아니면 된다.”
이미 눈에 초점을 잃은 지유.
가엾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내 아들이다. 나와 내 아내가 갖지 못했던 우리의 미래다. 너 같은 인간 병기 때문에 내 아들을 잃을 순 없다.
“이대로 두면, 쟌 회장이 현중일 죽이려 들 게다. 너도 그건 원하지 않을 텐데?”
“박현중은 내가 지켜. 죽게 놔두지 않아.”
오기가 바짝 서려있는 그녀의 목소리.
난 소름이 밀려왔다. 고작 18살의 나이에 저렇게 변해버린 건가?
언젠가 쟌 회장이 말하던 병기화.
그의 말에 의하면 지유는 이미 뇌의 절반이 병기화 된 후란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마지막은 죽게 해줘.”
잠자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날 향해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마지막은 죽게 해달라고.
그것은 아마 인간으로서 그녀의 마지막 소원일 것이다.
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현중이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 같구나.”
“오면 안돼.”
“난들 어쩌겠느냐. 내 아들이지만 고집하나는 정말 세거든.”
“…”
“내가 지금 내 아들을 말리지 않는 이유는 널 믿기 때문이다.”
“…”
“네가 현중이를 죽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난 알 수 있다.
넌 네가 병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쟌 회장의 손에 현중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걸
믿기 때문에 녀석을 말리지 않는 거다.
“…앞으로도 오빠를 잘 부탁합니다.”
고개 숙인 그녀로부터 어색한 존댓말이 들려왔다.
“당연하지, 내 아들인데.”
난 지유를 미워하지 않는다. 동정한다. 어린 나이에 병기가 되어야 했고, 하나뿐인 혈육을 잃어야 했고, 어린 시절을 잃어야 했고…
이젠 사랑까지 모두 잃어야 하는 그녀를 동정했다.
그렇게 G 그룹의 본사로부터 나온 직후.
커다랗게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가 날 미소 짓게 만들었다. 조금 슬픈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아마 사이렌의 원인은 현중이겠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넌 달려갔겠지.
내 아들은 여자를 위험 속에 내버려두는 일 따윈 배우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은 슬플지 몰라도, 지금은 네 편이 되어주마.
하지만 지유, 넌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꼭 그를 지켜서 내 앞에 데려다 놓겠다던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박회장님, 어서 타십시오.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았네.”
네 오빠이기도 하지만,
그는 13년동안, 내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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