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26]
일심일애(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26
...
이미 익숙해진 전자파따위 내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아픈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계속 가슴이 쑤시듯이 아파온다.
박현중…
너, 나한테 거짓말 했어.
눈물은 위로해주기 위해서 나오는 거라며. 근데 위로 안 된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이젠 바보 같은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다 몇 번 실패한 뒤로 꼼짝없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누워 만 있는 나.
전자파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만 의식이 흐려진다.
“드르륵_”
돌아온 후, 줄곧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고 흐릿한 내 눈동자에 누군가가 보인다.
“…내가 행복해지라고 그랬었잖아.”
앞이 흐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 하지만 난 지금 이 곳에 와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지안이다.
특유의 화려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지안이다.
“행복…”
나하고 거리가 먼 단어네.
잠시 동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릴 수 없던 잠깐의 행복이 과분하다고 여겨질 만큼.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절망이었다.
“가자, 여기서 내보내 줄게.”
“…아니.”
“웃기지마! 이대로 있으면…넌 죽을 때까지 G그룹을 위한 병기가 돼!”
“상관없어.”
사실은…몇 번이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박현중을 만나서 행복했고, 그 집에 있던 하루 동안 꿈이라고 생각될 만큼 행복했어.
사실은…그랬어.
“병기화…된다고…이 바보야.”
난 멍한 의식 속에서 지안의 병기화라는 단어에 눈을 번쩍 떴다.
병기화란 단어를 난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날 수술해준 박사란 사람에게서 들어 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건…로봇과 같은 상태라고 했다. 뇌가 죽어있는 것과 같은 인간 병기.
“나 그럼, 인간 아니게 되는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안을 응시하며 난 말했다. 지안은 잠시 침묵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안돼.”
“그러니까 여기서 달아나.”
“달아난다 해도 뭐가 달라지는데? 이미 내 몸이 변하고 있다는 걸 내가 느껴!”
“…그럼?”
내가 피를 토한 그날부터 느꼈다. 몸이 점점 더 변화하고 있다는 걸.
처음엔 죽을 만큼 아팠지만, 그 아픔도 잠시에 그치고 말았다.
내 몸은 점점 더 감각이라는 걸 잃어갔다.
“그럼 이대로 병기가 될 거야?”
지안이 내게 물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이대로…병기가 되도 괜찮은 건가? 아니, 그건 싫어. 죽어도…인간답게 죽고 싶다.
난 지안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나가자.”
“…”
나를 내보내주면, 넌 어떻게 되는 건데? 라는 물음을 하지 못하는 건.
녀석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렇게 물을 수 없는 건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난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난 상관하지 말고, 나가.”
“…몰랐었다.”
“…”
“왜 그 사람이 오빠라는 걸…난 몰랐던 걸까.”
“알았다면.”
“…”
“알고 있었다면, 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
“적어도! 적어도 그러진…않았을 거야.”
또 다시 초점 없는 눈에서 눈물이 투둑하고 떨어졌다.
배우지 말걸. 우는 법 따위는 배우지 말걸.
이젠 울어도 된다고…이제는 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이 생긴 줄 알았는데…아니었어.
그게 아니었어.
“난…세상을 원망할 거다.”
“…”
“날 이렇게 만든. 끝까지 날 울게 만드는 세상을.”
내가 처음으로 운 건, 다섯살 그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는 건 지금일 거다.
아무 말 없이 지안은 그런 날 꼭 안아 주었다.
“미안.”
“…”
“널 보내주지 못해서. 또 이런 곳에 갇혀있게 만들어서.”
“…”
“네 사랑까지 지켜준다고 말했었는데…미안해.”
“사랑이 아니었어.”
오빠였어. 사랑이 아니었어.
“그래도…”
“…”
“사랑한건 부정하지마.”
“사실은.”
나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라서. 그래서…믿기 싫었던 거야.
정말로 믿기 싫었어. 오빠라는 거 믿기 싫었어.
“…우린 남매라서 서로에게 끌렸던 게 아닌데.”
“알아.”
“단순히 그냥 서로에게 끌린 것 뿐인데, 이건 아니야…”
“…알아.”
다시 눈물을 떨구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지금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알아주는 지안.
너한테 위로 받으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는데
나, 약해졌다. 이 정도에 무너질 만큼 약해졌다. 박현중 때문에.
“난 그 남자한테 못 당하나 봐.”
“…뭐.”
“널 울릴 수 있었잖아.”
“…”
“난 13년 동안, 한번도 못 했는데 그 남자는 해냈잖아.”
“날 울리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얘기하는 구나.”
피식, 웃어 버렸다.
지안 녀석이 들어 오면서 꺼버린 전자파 때문일까. 머리가 다시 맑아져 온다.
그리고 난 한가지를 결심했다.
“지안, 부탁이 있어.”
“뭔데?”
난 손목에 걸려 있는 추적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좀 풀어줘.”
“가려고?”
“…지켜야 할 게 아직 남았어.”
…이대로 달아나면 쟌 회장님은 박현중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지켜야 돼.
네 말처럼, 사랑한걸 부정하지 않을 거야.
지안의 손에 의해, 암호로 이루어진 추적장치가 손목에서 풀려난다.
이제야 가벼워진 손목을 난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다. 심지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
“나 대신 박현중을 지켜주면 된다.”
또다시 이곳에 고요한 침묵이 감싸온다. 지안은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 나보고 지금…네 대신이 되라고?”
“…”
“넌…?”
“죽어.”
난 단호한 목소리로 지안에게 말했다.
이미 알고 있잖아. 내가 결정한 선택이 무엇인 지를.
“너…정말 잔인하구나.”
“…”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고서 넌 죽겠다고!?”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냐…있을 거야.”
“…없어.”
“아니야!”
지안의 고함소리가 철문으로 꽉 막힌 이곳에 울려 퍼진다.
“어떻게 살까? 속을 다 끄집어 내서, 새로 바꿀까? 아니면 새로운 몸으로 이식이라도 할까?”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이미 내겐 남아있는 게 없는데…몸도 마음도, 사랑도.”
마지막 사랑이란 단어가 왜 그렇게 흔들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건 아마 이게 끝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지안이 일어나란 듯이 손을 내 앞으로 내민다. 물끄러미 그 손을 쳐다보고 있던 난 손을 잡고 일어 섰다.
이 곳을 나가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철문을 앞에 다가간 나. 우선 이곳을 통과하게 위해 철문에 걸려 있는 결계를 풀어야 했다. 이 문은 내가 나갈 때를 대비해서 나에게만 작동하는 문이니까.
“비켜서, 지안.”
“응.”
손을 철문에 가져 다 댄 후, 감시 카메라에 걸리지 않게 나의 초능력을 사용했다.
위이잉_ 하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다 멈춘다.
결계가 꺼짐과 동시에 카메라의 작동소리도 멈췄다.
비틀거리는 두 다리. 초능력 한방에 이렇게 몸도 가눌 수 없는 내가 한심스럽다.
“괜찮아?”
“…당연히 안 괜찮아.”
“내가! 내가 남아서 백신을 찾아볼게.”
“그런 건 없어.”
어떤 방면으로 철저한 회장님께서 날 위한 해독약을 준비해두실 리가 없는 걸.
이제 모든 장치가 해지 된 전자파실을 나가는 데, 뒤에서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이는 지안.
“…죽지마.”
목이 메인 그의 목소리가 아주 약하게 귓가에 머물렀다.
난 내 어깨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지안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제발 죽지마…그런 건 싫어.”
“…”
“말을 해.”
멈춰있던 눈물이 또다시 새어 나오려 한다.
안돼. 아직은…마지막이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울면 안돼.
“내 대답이 뭔지.”
“…”
“알잖아.”
사람들은 날 킬러라 불렀다. 잔혹한 인간병기 에델.
난 상부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당연하게 해왔다. 영국 고위층의 귀족을 암살하는 일이며, 미국의 정치인…그 밖에 세계 각 국의 갑부들.
그들은 언제나 내 손에 의해서 죽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난 항상…사람을 죽이는 게 무서웠다.
마지막인 그들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난,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 것이란 예감에 슬퍼졌다…지금이 그때 인가 보다.
“내가 죽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돼.”
“…”
“난 그게 싫다.”
“난 네가 죽는 게 싫어. 그 무엇보다!”
지안의 눈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난 그저 말없이 녀석의 눈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쓸어줄 뿐이었다.
“내가 내린 결정이야, 죽는 게 제일 인 거야.”
“그딴 거…누가 정했는데.”
“내가…내가 정할 수 밖에 없었어.”
“가자.”
그렇게 몇 분간 흐느끼던 지안의 숨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난 손목을 잡아 이끄는 지안에 의해 한걸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 손을 놓지않으려는 듯, 꼭 잡고 있는 지안. 그런 그를 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 네 보안 강화 때문에 이쪽에는 신경도 안 쓰실 거야.”
“보안…?”
“네가 병기가 되면 말 그대로 미쳐 날뛸 테니까.”
“…그렇겠지.”
그건 괴물이 된다는 것과 같은 거야. 난 그렇게 되기 전에 죽고 싶어. 그가…내 정체를 알게 되기 전에 죽고 싶어.
또다시 눈시울이 붉게 변해버린 날 향해 지안은 말했다.
“아직…울지마.”
“그래.”
“지금은 마지막이 아니니까 울지 마.”
“응.”
그래, 지금은 마지막이 아니니까. 내가 눈물을 참을 수 있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니까.
“애애애앵___”
헬리콥터가 대기중인 옥상의 비상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귀에 째질듯한 경보음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발각된 건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옥상에 있는 음성 마이크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날 다시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게 만들었다.
-지유 어디 있어?! 유남희 어디 있냐고!!
제발…
…그 이름으로 부르지마.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마.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렇게 부르면 난 무너질 것 같다.
복도에 장착된 마이크로부터 들리는 목소리는 박현중의 목소리였다.
“어디가!”
“…지켜주러.”
“죽지마. 제발 죽지마.”
“살 수 있다면.”
“제발!”
운전석에 앉은 그거 내게 소리 쳤다. 그리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안에게 밝게 웃어 주었다.
“살 수 있다면. 너랑 현중이랑 나랑 셋이서 살고 싶어.”
난 뛰었다. 내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할 곳으로. 이대로 체력이 다해 병기가 되기 전에 그의 곁으로 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지안. 이것 봐. 알고 있잖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난, 너무 잘 알고 있잖아.
십 오분을 달렸을까. 경호원들의 빗발치는 총소리를 피해 기둥에 숨어, 거친 숨을 토해내는 박현중이 보인다.
“오빠.”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은 걸까, 밝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외치는 박현중.
“오빠라고 불렀어? 지금?”
“…그래.”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다. 그치?”
“네가 내 오빠란다.”
그의 밝은 미소가 조금씩 사라져간다.
“…네가 한 농담 중에 제일 재미없다. 지유야.”
떨리는 현중이의 목소리, 아니 오빠의 목소리. 난 손을 뻗어 땀이 흘러내리는 그의 뺨을 만져 주었다. 나 지금 울고 싶다.
제일 울고 싶은 건 난데, 바로 눈 앞의 박현중이 울고 있다. 스르륵,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거짓말 하지마! 나, G 화학 외동아들이야! 너 같은 동생 없어!”
…
그런데 왜 울어. 난 현중의 눈물을 감춰주기 위해서 품 안에 꼭 안아 주었다.
“난, 네 눈물이 되고 싶었다…네가 슬플 때 위로해줄 수 있게 눈물이 되고 싶었어.”
동생이 아니라, 눈물이 되어주고 싶었어.
“…안돼.”
내 품 안에 갇혀 잘 들리지 않는 '안돼'라는 목소리. 난 피식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가 대답했다.
“…그럼 난, 매일 울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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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말이 없는 - _ - 풀빵은...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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