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25]
일심일애(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25
"근데 넌 대체 왜 늦은 거니?"
"아, 선배랑 같은 이유죠. 뭐."
"오늘따라 너 기분 좋아 보인다?"
"그럴 일이 있어요."
회의실로 가기 위해 출석부와 학급일지를 정리하고 있는 날 향해 끈덕지게 물어오는 정선배.
이 인간한테는 말하면 안될 것 같다.
왜! 우리 아버지의 스파이니까.
“어라, 왜 시선을 피하고 그르냐? 빨리 실토 안 해?”
“뭘 실토하라는 건지, 참.”
“야아!”
“아이고,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난 회의실에 계시는 선생님들께 인사를 함으로써 정선배의 끈질긴 질문을 회피해버렸다.
여전히 잠 오는 회의시간.
지금쯤 자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미친 듯이 떠들고 있겠지. 부러워 죽겠다, 요놈들아.
“야, 박현중.”
“회의 중이잖아요.”
“하나만 물을게, 너랑 지유랑 정말 사귀니?”
“무슨 소리 하시는 지…”
“대답안 하면, 나 소문 낸다?”
“후…선배, 교장선생님이 우리 둘 노려보시는 거 알아요?”
소근 소근, 자꾸만 내 옆 자리에 앉아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치는 정씨 아줌마.
나이 지긋한 교장 선생님께서 보시다 못해 한 말씀 하신다.
“박선생, 정선생. 연애는 회의 끝나고 하세요.”
“네?!”
또 나를 골탕 먹였다는 기쁨에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정선배와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에 고개를 파묻는 나다.
험험, 교장 선생님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다시 회의는 진행됐다.
* * *
“내가 진짜 선배 때문에 미쳐!”
“미치지마.”
“또 교장 선생님한테 찍혔잖아요!”
“원래 찍혀 있었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서도, 뭔가 억울한 기분이다.
아무튼 홱 무시하고 교실로 들어서는 데, 왜 이 아줌마는 날 따라 교실에 들어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왜 따라 들어와요?!”
“그냥.”
“아, 진짜.”
“아침 댓 바람부터 맞기 싫으면 조용히 하는 게 좋을걸.”
으드득, 뼈마디 소리를 내며 싱긋 웃어보이는 정선배.
칠판 지우개를 주고 받으며 놀던 무리들을 향해 지그시 앉으라는 눈빛을 보내고 교탁에 서는 나.
“어라, 아침부터 되게 진한데요, 두분?”
“진하긴 뭐가 진하냐, 앉아라. 제발 진정하고.”
“네에.”
“반장, 인사하자.”
정선배를 향해 ‘안 나가요?’ 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지만 이 여자는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 마침 인사를 하기 위해 일어난 반장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지유 아직 안 왔어요.”
“…아, 알아.”
“네, 그럼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삐딱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의미 모를 미소만 지어 보이는 정선배.
이 아줌마는 대체 무슨 꿍꿍이야?!
“인사 받으셨으면, 이제 좀 미술실로 가세요. 네?”
“흥, 안 그래도 갈 거다. 얘들아 안녕~”
여유만만하게 손을 흔들며 뒷문으로 사라지는 정선배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나.
“선생님, 지유 왜 안 오는 건데요?”
“보희씨, 언제부터 지유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나?”
“갑자기 안 오니까 궁금하잖아요.”
“몸이 좀 아프다고 전화 왔으니까 그런 줄 알아.”
끈덕지게 지유의 행방을 묻는 보희다. 오늘은 참 보기 민망한 깻잎머리를 한 이 아이.
그나저나 지유는 널 꽤 싫어한 걸로 아는데?
싱긋 웃으며 보희의 물음도 피해버렸다.
오늘은 수업이 4시간 밖에 없어서 다행이다. 4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선생님 오늘 기분 좋아보여요.”
“응, 기분 째져.”
물론 내가 기분 좋은 이유를 말할 순 없지만.
* * *
“네, 지유는 박현중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았다.
쟌 회장의 심복 부하이자, 지안을 대신해 지유의 학교 생활 모두를 감시하던 G그룹의 그림자 간부.
세계 각 미소년 사진들이 붙어 있는 앨범 속에 숨겨진 서류를 꺼내, 자신의 사인을 새겨넣는 그녀는 박현중의 대학교 선배인 정춘자였다.
‘후, 미안하다 현중아.’
춘자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이 학교에 작정하고 교사로 취직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찮게 G그룹에 의해 지유가 자신이 있는 학교로 편입되었을 뿐.
정춘자는 지유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룹의 기대주인 인간병기 ‘에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에델은 자신의 직장동료이자 후배인 박현중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은 본의 아니게 그들 사이를 방해할 수 밖에 없었다.
“쟌 회장님, 지금 그리로 가겠습니다.”
박현중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집어 들고, 미술실을 나서는 정춘자.
* * *
‘제발 대답해’
멍하니 TV를 보고 있던 지유는 언뜻 들려오는 지안의 텔레파시에 깜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고개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펴보던 지유는 베란다 문을 열고 정신을 집중했다.
‘무슨 일이야.’
지안에게 자신의 텔레파시를 전하는 순간, 다리가 휘청거린 그녀다. 힘없이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버지가 네 행방을 찾고 계셔, 알아?’
‘…안다.’
‘어디 아파?’
‘아니.’
사실은 아침부터 계속되는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지유였다. 하지만 지안의 물음에 간단하게 ‘아니’ 라고 대답한 지유.
지안은 그녀에게 있어서 친구였다.
‘나 지금 비행기 안이야.’
‘…바보.’
‘너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길이야.’
‘회장님께 잡히지나 마.’
피식, 웃으며 지안의 텔레파시를 듣고 있던 지유다.
‘내 걱정 하지말고 네 몸이나 생각해. 절대 무리하지마. 알았어?’
‘안 해.’
‘절대 함부로 초능력 쓰지마.’
‘그래.’
미약한 불꽃을 겨우 뿜어 내던 지유는 지안의 괜한 걱정에 한숨 쉬며 창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황급히 커튼 뒤로 숨기에 이른다.
창 밖을 바라보던 지유의 눈에 비친 사람은 다름아닌, 정춘자였다.
‘…나, 지금 위험한 것 같다.’
‘뭐?’
‘예상대로 미술선생이 G그룹의 간부였어.’
‘그 밝힘증 여선생 말이야?’
‘응.’
지유는 지안의 텔레파시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혹시나 정선생이 전파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
예상했던 것처럼 오분 뒤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함께 정선생의 목소리도 지유의 귀에 들려 왔다.
“지유야, 안에 있지? 문 좀 열어 줄래?”
“…”
“현중이가 가보라 그래서 온 거야. 문 좀 열어줘.”
“헛소리 집어쳐.”
현관을 향해 날카로운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잠깐동안 바깥에서는 침묵이 머물렀다.
그러더니 철커덕_ 하는 소리와 함께 박현중이 굳게 잠가 놓고 간, 현관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정춘자. G 그룹의 그림자 간부인 그녀의 능력은 금고 해독이었다.
“후, 알고 있었구나?”
“…”
열린 현관을 유유히 지나쳐, 또박또박 하이힐 소리를 내며 집 안으로 들어 온 정춘자.
지유는 그녀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경계 태세로 있는 지유를 힐끗 쳐다보며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그렇게 겁먹을 건 없어. 여기서 내가 널 끌고 갈 건 아니니까 말이야.”
“…”
정춘자는 지유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을 보며 싱긋 웃어보이며, 지유 가까이 다가왔다.
“뭐 널 끌고 갈 능력도 안 되고, 그러니 그 불은 좀 꺼주겠니? 안 그래도 힘이 딸릴 텐데 안 그래?”
“닥쳐.”
“무섭잖아, 너 현중이 앞에서도 그러니?”
“상관하지마.”
지유는 자꾸만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는 저 여자를 눈 앞에서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물론 초능력이 몸에만 따라 준다면 말이다.
하이힐을 신고 집안으로 들어온 것도 그녀의 신경에 거슬렸다.
“난 쟌 회장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을 뿐, 널 데려가려고 온건 아냐. 물론 말을 듣고 나서 네가 날 따라오는 건 자유지만 말야.”
“…”
“겁먹었니? 아까의 살벌한 말투는 다 어딜 간 걸까?”
“쓸데없는 말 한마디만 더하면 머리를 날려버릴 줄 알아.”
“그래, 그게 너 다운 것 같아. 요즘은 병기주제에 주제파악 못하고 헤실거리는게 재미 없었거든.”
생각했던 것보다 지유의 반응이 조용하자, 그녀는 가지고 온 핸드백 안의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지유의 발 앞에 보란 듯 떨어뜨려 놓았다.
“읽어봐.”
“…”
“네가 G그룹에 그렇게 부탁했던 자료니까.”
지유의 눈 앞이 흐려졌다. 바로 눈앞에 서류 봉투 안에 자신이 그렇게도 찾던 오빠에 대한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식은 멍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떨어진 노란 서류 봉투를 주워 들었다.
“읽어본 후 오피스텔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
서류 봉투를 열어볼 생각은 하지않고 멍하게 서있는 지유를 보더니 정춘자가 말했다.
지유는 물끄러미 봉투를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그럼 먼저 가볼게. 그리고 현중이한테 내 정체를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가만 안 둔다.”
“뭐?”
“박현중한테 손 하나라도 대면 가만 안 둔다고 했다.”
“걘 내 후배이기도 하니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나도 걜 꽤나 예뻐 하거든.”
“…”
안심하라는 손짓으로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정춘자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손에 든 서류 봉투를 열어보는 지유.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
천천히 서류의 표지를 한 장 넘기고, 점점 굳어져 가는 지유의 손은 그대로 그것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야 만다.
그리고 지유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될 까봐…무서웠다.”
왜 몰랐을까. 그렇게 옆에 있었으면서도 몰랐던 걸까.
아니,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자신의 오빠가 그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오빠.”
바닥에 힘없이 주저 앉아있던 지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G그룹의 본거지인 제너멀 오피스텔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리고 거리를 향해 맨발로 걷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는 이제껏 참아왔던 13년간의 모든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나온 듯, 멈추지 않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걷다, 도저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는 걸 느낀 걸까.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그녀는 쟌 회장이 기다리고 있는 제너멀 오피스텔의 상층부로 텔레포트 했다.
다행히 아직 서있을 기력은 남아있었다.
비틀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모은 다음, 지유는 두 눈을 들어, 눈 앞에 있는
쟌 회장에게 소리쳤다.
“…왜!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 모양이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를 맞이하는 쟌 회장.
지유의 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물이 고여있는 걸 발견한 그는 냉정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눈물은…배우지 않았을 텐데.”
“…”
“넌 병기다.”
“…아니, 난 인간입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는 지유.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지유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물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네 오빠라는 인간이…”
“…”
“안전하길 바라겠지.”
“허튼 수작…”
“허튼 수작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하는 짓을 보고 하는 말이야.”
지유의 말을 가로막은 채, 쟌 회장은 옅은 미소를 띄고서 말했다.
“네가 존재한 이유가 아니었나?”
꼭 쥐고 있는 지유의 두 주먹이 아직도 떨리고 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선하게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의 미소가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다.
또다시 모든 것이 차단된 깜깜한 전자파실에 갇힌 지유는 눈을 감은 상태로 말했다.
“내가 존재한 이유…네가 이유였다.”
지유의 목메인 말소리에 지잉_ 하고 그녀를 비추는 감시 카메라.
그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다행히 감시 카메라에게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지유가 애타게 부르고 있던 한 마디가.
‘현중아…아니,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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