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24]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24
쟌회장이 한국으로 출발한 지 2시간 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는 지안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병기화. 그것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인간이 아닌 상태의 병기. 그녀가 곧 그렇게 된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제발 지유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랬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지유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 지를.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넌 행복해져야 돼.”
지안은 아래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국에 있을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유야…들려?’
잠잠한 파동. 그녀로부터 대답이 오지 않는다.
지안은 두 손으로 가만히 귀를 막았다. 혹시라도 주위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대답해.’
‘아버지께서 널 찾고 있어. 이제 곧 추격자를 보낼 거야!’
마음은 급해 죽을 것만 같은데, 지유로부터 텔레파시는 전혀 오지 않는 상태다.
일부러 대답을 피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지안의 텔레파시가 들리지 않는 것일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던 지안은 급히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겨 들었다.
“아무도…방해하지 못하게 할게.”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는 맹세했다.
그녀의 사랑까지 모두 지켜줄 거라고. 그 누구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게 하겠다고.
하지만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었다.
§*§ §*§ §*§
“지유야…어디 아파?”
“…”
잠결에 끙끙 대는 소리가 난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옆방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지유다.
무슨 꿈을 그리 꾸는 지, 식은 땀이 이마에 범벅이 된 지유.
난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그러길래 병원 가자니까 말 진짜 안 들어.”
“오빠…”
“응?”
“…오빠”
지유의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 한 줄기가 흘러 내린다.
그리고 오빠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꿈에서도 오빠를 찾는 모양이다.
난 측은하게 지유를 바라 보았다.
오빠로 착각하는 건지, 내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꼭 잡고 있는 지유다. 차마 난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후…이대로 밤새면 너랑 나랑 같이 잔 게 되는 거야, 알아?”
“…”
“어휴,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
불을 끄고, 얇은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준 다음 팔을 괴고 지유의 옆에 누운 나.
어둠에 익숙해진 탓에 지유의 옆 얼굴이 다 보인다.
가지런한 눈썹, 잡티하나 없는 피부.
점점 더 예뻐지겠지, 이 아인.
아직까지 꼭 잡고 있는 손에서는 땀이 배어나오지만 괜히 놓기가 싫었다.
“사랑해, 지유야.”
지유의 이마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가는 나다.
좀 엉큼한가?
나까지 얇은 이불 속에 파고들었다.
§*§ §*§ §*§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내! 이 서울 안에는 있을 거다.”
“네.”
“내가 너한테 괜히 감시를 맡긴 줄 아나?!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한편 그들의 평화로운 시간 뒤에는 G그룹에서 인간병기 G-you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쟌 회장은 어둠 속에 있는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인원은 얼마든지 동원해도 상관없다. 다만, 정부 측에 들키지 않게 신속하게 찾아라.”
“네, 알겠습니다.”
삐리리_ 쟌 회장의 재킷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인상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꺼내 드는 쟌 회장.
“무슨 일이야?”
-저…회장님, 그게…
“빨리 말해.”
-지안 도련님께서 사라지셨어요!!
“…당장 공항 승객 조회해봐.”
-네.
“그리고 다시 연락해.”
-네, 알겠습니다.
휴대폰 폴더를 닫는 쟌 회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간다.
‘지안…네가 결국 일을 내는 구나.’
자신과 달리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는 아들이 그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벗어 둔 썬 그라스를 집어 들고서 그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나섰다.
아마 자식의 예상대로라면 지안은 지금쯤 한국을 향해 오고 있으리라.
“회장님, 어디 가십니까?”
“공항으로 간다.”
“지유는 찾으면 어떻게 할까요?”
“전자파실에 우선 가둬두도록.”
‘지유, 네가 달아나 봐야, 내 손바닥 위다.’
쟌 회장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유가 마지막엔 이곳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에 대한 모든 조사는 이미 끝마친 G그룹 이기에.
그리고 지유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기에.
“네 오빠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느냐.”
차 안에서 기사가 그에게 서류를 내민다. ‘지유의 친 오빠에 대한 자료’라는 표지의 서류를.
쟌 회장은 조심스럽게 서류를 건네 받아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일에 끼워진 얇은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그는 커다랗게 변한 눈동자로 서류를 주시한다.
“이런, 정말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건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공항으로 가기 위해 차를 출발 시키는 쟌 회장.
열려진 창문 때문에 펄럭이며 넘어가는 서류 파일.
그 펼쳐진 종이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글씨가 있다.
‘박현중’
§*§ §*§ §*§
…
“뭐하나.”
화들짝.
눈을 뜨자마자 바로 코 앞에 와있는 지유의 얼굴 때문에 깜짝 놀란 나다.
“하하…잘 잤니?”
“옆에서 뭐하시나?”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건지, 머리를 올려 묶은 지유에게서 향긋한 비누냄새가 난다.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는 나다.
“현중아.”
“나, 지금 쪽 팔리니까 조금 있다 말해.”
“오늘 월요일인데…”
“악, 맞다!”
맞다, 오늘 월요일이지! 미치겠네!
벌떡 일어나 욕실로 뛰어가는 나다. 욕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다행히 10시까지는 교무회의가 있으니.
그나저나 저 녀석은 어떡하지?
우물우물 칫솔질을 하면서 방안으로 내다보니, 이불을 정리하고 있는 지유가 있다.
착하기도 하지.
“치약 떨어진다.”
“웅?”
“양치질이나 마저 하시지.”
“그래.”
귀염성이라고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구나.
무안해진 난 욕실 문을 다고 다시 양치질에 전념했다.
“현중아.”
“응?”
“나 학교는…”
“오늘은 결석하고 집에 있을래?”
“응.”
“그래.”
욕실 문에 대고 말하는 지유가 머리 속에 그려져 웃음이 나온다.
면도를 마친 후 거품을 씻어내려는 데, 주방에서 쾅_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앗 따가워.
깜짝 놀라 쥐고 있던 면도칼에 볼이 살짝 베여버렸다.
“무슨 일이야?!”
거품을 대충 수건으로 닦아낸 후에 주방으로 달려가는 나.
후…일도 참 가지 각색으로 벌여 놓는 구나, 지유야.
선반 위에 있던 후추 통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주위에 후춧가루들을 가득 뿌려놓은 채.
“설마 뭐 나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려다가 그렇게 된 건 아니지?”
“아니다.”
“후…에이취!”
“바보 박현중.”
“이거 치워야….에이취!”
난 콜록거리느라 정신 없는데, 이 아가씨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지 쿡쿡, 웃고 있다.
콩 하고 주먹으로 살짝 지유의 머리를 친 다음, 바닥에 흩어진 가루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학교는 정말 어떡하지?”
“…”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중얼거리는 내 옆에 다가와 같이 쭈그리고 앉는 지유다.
힐끗 옆을 쳐다보자, 가만히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지는 지유.
“다쳤네.”
“아, 아까 놀라서 면도칼에 베였어!”
“칠칠 맞다.”
“죽을래?!”
싱긋_ 웃어보이며 일어나는 지유. 쟨 아마 미소가 무기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또 당했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게 그녀가 말한다.
“밥 안 하나?”
“…후.”
누가 이 집 주인인지.
나야, 원래 타고난 마당쇠 체질이라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너도 거들어!”
“손님이잖아.”
“손님 좋아하네, 빨리 이리와!”
“…”
군말 없이 쪼르르 다가와서 내 옆에 서는 지유. 난 녀석을 붙잡고 먼저
달걀 프라이를 가르쳐 주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주 존경스러운 까지는 아니더라도
신기한 듯 내 손놀림을 보고 있는 지유.
“나도 해볼래.”
“안돼.”
“왜.”
“이번에는 계란을 깨부셔 먹으려고 그러냐? 안돼!”
“안 부순다.”
“잘도 내가 너를 믿겠다.”
심통이 난 걸까. 식탁 의자에 털썩 앉은 채로 내 뒤통수를 열심히 노려보고 있는 지유.
난 후_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와,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째려보고 있지 말고.”
.
.
.
오늘은 월요일, 교무회의가 있는 날이니까 양복을 입어야 하나.
안 그래도 교장 선생님께 찍혀있는 마당에.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지유다.
난 웃으면서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나, 양복 입으니까 멋지지?”
“아니.”
“야, 빈말도 못하냐.”
“응.”
후, 내가 널 데리고 뭘 하겠냐.
한숨을 쉬고서 다시 거울을 보고 있는 내 앞에서 와서 서는 지유. 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비뚤어진 넥타이 핀을 고정시켜 준다.
“이제 멋있다.”
“후, 감동 먹이는 것도 가지가지네.”
“난 뭐해.”
“글쎄? 집에서 TV나 보고 있을래?”
“현중아.”
“응?”
넥타이 고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정리하는 데 갑자기 또 뒤에서 안겨오는 녀석이다.
난 하던 일을 멈추고 거울 속의 지유를 바라보았다.
“너, 은근히 이 포즈 좋아하는 거 알아?”
“…”
“왜 그래, 할말 있어?”
“학교에 가면.”
“응.”
“절대 아무한테도 내 얘기 하면 안돼.”
우리 사이는 역시 비밀에 부쳐야겠지?
난 싱긋 웃으며, 안심하라는 손짓으로 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응, 얘기 안 해. 내가 바본 줄 알아?”
“아무도…”
“그래, 그래.”
“믿으면 안돼.”
“알았어.”
“잘 다녀와.”
후, 내 집에서 지유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다니.
뭔가 묘한 기분이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소나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 참 가볍구나.
“박현중!”
“…후.”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시 멈추어 섰다.
날 저렇게 거칠게 부르는 여자는 세상에 단 두 명밖에 없다. 지유는 방금 전에 헤어졌으니까 아닐 테고. 그럼…
가볍던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 져버렸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예요?”
“후후, 차 얻어 타려고 왔지. 너랑 나랑 같은 동네인데 안 그래?”
“그 잘 타시던 전철은 어쩌구요?”
“오늘은 나도 늦잠을 자서 말야.”
“자랑입니까?!”
“아무튼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교무회의에 늦지 않을까?”
아뿔사.
급하게 바라본 손목 시계는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악 제길. 적어도 10분 안에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오늘도 나의 BF 소나타는 정선배의 하이힐에 찍혀야 했다.
정신없이 엑셀을 밟고 있는 중에도 지유의 말을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아무도 믿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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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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