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일애

글/그림 :

에델바이스 [21]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21



지금쯤이면, 지안이 하늘 위를 날고 있을 거다.
G그룹에 들어온 그날부터, 주욱 내 옆에 있어주었던 존재. 그런 존재가 가버렸다.


지안.

녀석은 내게서 수호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어.
네가 날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어.




"가지마."




오늘도 녀석은 내가 위험하다는 걸 알아 차리고서, 그렇게 말했다.

알고 있었다.
항상 내 뒤를 맡아주던 사람이 지안이라는 걸. 그리고 지안이 없는 이 날이 얼마나
위험할 지,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명령을 거부할 힘은 없다.




"살아 돌아와”




한번도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불길하게 살아 돌아오란다.


바보, 아직 모르는 건가. 내게 살아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난 항상 죽을 힘 다해 살아 돌아온 다는 것을.


오늘은 마지막이 아닌데.
난 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될 테고, 지안은 그때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이상하게 오늘은, 나를 꼭 안아주는 녀석이 마지막으로만 기억될 것 같다.




"내가 네 사랑까지 지켜줄 테니까 행복해야 돼."
"..."




...녀석은 내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한테 미안해 할 필요는 없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서 ‘평범한 삶’을 빼앗아갔지만, 반대로…박현중을 만나게 해줬으니까.
지금은 감사해.




그나저나 청와대는 전과 달리 엄청난 경비 요원들과 보안 라이트로 무장을 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 조사를 하고 오는 건데.




“후문, 이상 없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지키고 있는 후문.
내 손에 붉은 화기가 머물다, 금새 꺼져 버렸다.




“…”




오늘 내가 죽여야 하는 상대는 단 한 사람. 한국의 대통령이다. 그 외에는 죽일 수 없다.
킬러는 필요에 의한 살인만 한다. 그리고 난 킬러다.


지안은 그런 내게 어쭙잖은 동정심을 발휘하다간 언젠가 칼 맞을 거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말하고선 꼭 뒤에서 지켜주던 녀석이었지만.


이젠 그렇게 지켜주던 녀석마저 없다.




“누구야, 거기?”
“…”




망만 보고 있다가, 재수없게 경호원 한명에게 들켜버렸다. 이럴 땐 모습을 감추어야 하지만
오늘따라 망할 초능력은 말을 듣지 않는다.




“누구냐!”
“…I am G-you.”




* * *



청와대 본부에서는 경보벨이 삼십분 전부터 울려대고 있었다.
경보벨의 원인은 지유였다.




“괴물이야! 난생처음 그렇게 강한 앤 처음이었어.”




부상당한 몸으로 구석에 쓰러져 있던 경호원은 그렇게 말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십분 만에
후문에 대기하고 있던 오십 여명의 인원을 모조리 바닥에 눕히고 지나갔다고.


단 한가지 이상한건, 사람을 죽이러 온 암살자가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희생자 없이
이곳을 통과했다는 거다.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 여자는 자신들을 다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실력으로 급소만 공격하고서 지나갔다.




“대체 어디서 보낸 놈이야?!”
“아무리 봐도 놈은 아닌데요.”

“시끄러워! 당장 서쪽 정원 수비하라고 연락해!”
“네.”




빠른 순간이동으로 서쪽 정원을 향해 가고 있는 지유.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붕대로 감겨 있는 손목을 다시금 고정시켰다.

자신도 모르게 흉기가 되어 튀어 나갈지 모르는 손이니까.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일 뻔 했어.’




식은 땀을 훔쳐내고 본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그녀다.
오늘 그녀가 앗아야 할 목숨은 단 하나. 이 나라 대통령이었다.


이 일만 마무리 지으면, 당분간은 일이 없을 것이다.




“!”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걷는 그녀의 발목을 잡는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청와대 본부에서 고용한 특공대의 함정이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떨어진 그물로 인해 꼼짝도 못하게 된 지유.


황급히 초능력으로 화기를 사용해보지만, 역시나 한 시간 전과 같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호오, 이거 범인은 미소녀가 아닌가?”




아차, 그제야 지유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순간이동으로 인해
벗겨졌음을 알아 차렸다.

눈 앞에 있는 역겨운 중년 남자는 아무래도 특공대의 중대장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래, 이 야심한 시각에 청와대는 무슨 볼일로 온 거지?”
“…내가 원하는 건, 대통령이다.”


“흠, 예상은 했지만. 그런데 대체 무슨 깡으로 여기까지 혼자 들어올 생각을 했을까?”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물 안은 그녀에게 매우 불쾌한 장소였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중대장을 날려버리고 싶을 만큼.
자꾸만 빈정거리는 말투와 함께 지유의 뺨을 건드리는 중대장.

중대장은 놀랐다. 한달 전 청와대를 발칵 뒤집어 놓고, 거기다 오늘 후문의 그 철저한 경계를 흐트리고, 자신이 있는 여기까지 온 킬러가 고작 어린 소녀라는 사실에.




“어쨌든 안됐구나, 대통령께서는 여기 안 계시거든.”
“…”




순간, 중대장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무표정한 두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놀란 그는 두 손으로 그물을 부여잡았다.




“범인이 사라졌다! 지금 즉시 이 일대를 다 수색해!”




특공대의 빠른 발걸음이 청와대 곳곳을 수색하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치 않은 몸으로 텔레포트 한 채 쉬고 있었다.




“하아…하아.”




G그룹의 박사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 했던 초능력.
그 중에서도 가장 에너지 소모가 큰 텔레포트는, 지금의 그녀에겐 너무 벅찼다.


담 옆에 기댄 채, 잠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그녀.
애애앵_ 하고 울리는 경보음이 가까이서 들려 온다.


주춤거리며 가누기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통령은 이곳에 없다.
목표도 사라진 셈이다. 이젠 혼자 힘으로 이 근처를 벗어나는 일만 남았다.




“제길…”




하지만 이미 한 번의 텔레포트로 인해, 소모된 체력은 쉽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정계와 재계를 상대로 수많은 테러를 강행했던 지유가 아닌가.


이런 작은 나라의 대통령 때문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샅샅이 뒤져!”




점점 가까워지는 추격자의 목소리. 그리고 사냥개를 풀어 놓은 건지 컹컹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머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다.

지유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담벼락에 기대어 천천히 걸었다.




‘지안, 들려?’




이미 하늘을 날고 있을 지안이지만, 유일하게 텔레파시가 통하는 상대인 그에게 지유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한참 만에 대답이 왔다.




‘무슨 일이야? 다쳤어?!”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지안의 목소리. 지유는 소리 나지 않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텔레파시를 보낸 이유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보나마나 비행기 안에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지안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였다.




‘난 괜찮아.’
‘웃기지마, 다친 거 아니야?!’

‘멀쩡해.’
‘거짓말하면 정말 가만 안 둬.’




정말…괜찮아.

힘없는 두 다리로 인해, 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 지유. 감겨오는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든다.




“…하, 여기서 죽지는 않아.”




힘주어 주먹을 쥐어 보지만, 이미 기력이 다할 대로 다한, 자신의 몸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데서 죽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게 아니다.




“…”




떨리는 주먹으로 땅바닥을 쳐내던 지유. 그때 그녀의 눈에 승용차 불빛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쫓아온 건가?’


여차하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력으로 화기를 뿜어낼 작정으로 정면에 있는 승용차를
노려보는 지유다.

하지만 이내 끼익_ 하고 멈춰선 차는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것이었다.




“…여기서 못 죽어.”

“당연히 여기서 죽게 놔두지 않아.”




…?

가물가물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지유. 그녀의 눈꺼풀 사이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순간이 환상이 아니길. 늘 꿈에서만 나타나던 환상이 아니길.
그렇게 빌었다.




“일어나.”
“현중아.”


“일단, 차로 가자. 왜 이러고 있는 지 묻지 않을게.”
“…꿈 아니지.”




승용차가 나타난 그 순간부터 떨리고 있던 지유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그랬다. 지유의 눈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은 박현중이었다.


청와대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는 지유를 번쩍 들쳐 메고서 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지유를 눕히는 그다.


꿈이냐는 지유의 물음에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준 뒤,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눈물은 언제 흐르는 건가.”
“지금.”




묵묵히 차를 몰고 있던 현중에게 지유는 눈물은 언제 흐르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지유의 물음에 박현중은 대답했다.

지금이라고.


그리고 감고 있던 지유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흐느끼는 소리 하나 없이, 그렇게 흘렀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분노로 힘이 실린 현중은 지유가 뒤에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울어도 돼, 이젠…울어도 돼, 유야.”




지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소리 없는 눈물을 토해냈다.


왜 하필 이런 상황에 나타난 사람이 박현중이었을까.
이젠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울고 싶을 때 울어. 눈물은 참으면 안돼.”



.
.
.


지유는 그렇게 몇 시간을 차 안에서 눈물로 보낸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깨어났을 땐,
따뜻한 침대 위에 뉘여 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깨자,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

“일어났어?”




부시시한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박현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채, 눈만 끔뻑이고 있는 지유. 그런 그녀를 한참 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현중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오늘 일요일이라서 다행이지?”
“…여기.”

“아, 우리집.”
“…”




옷은 어제 입고 있던 검은 제복 그대로다. 지유는 어젯밤의 일을 생각해냈다.

미친 듯이 눈을 감고 울부 짖었던 일.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던 일.
그리고 임무에 실패한 일.




“너희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영 찜찜해서 말이야.”
“…”

“나, 너 안 건드렸어!”
“알아.”

“어?”
“건드렸다면, 박현중은 죽었을 거다.”

“협박이냐?”
“응.”




돌아가면 받아야 할 처벌이 산 더미처럼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유가 웃을 수 있는 이유.
그녀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킬 박현중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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