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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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13]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13




"하아...하아."




초음파가 더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위잉- 하고 귀를 스치던
그 끔찍한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괜찮아.


들키지 않았으니까.



내가 박현중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
들키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의지한채 겨우 방문 앞까지 걸어 온 나.
달칵, 열어둔 적이 없는 문인데, 저절로 돌아가는 손잡이다.



난 지안 녀석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칵 소리를 내며 열린 하얀 대리석 문 저편에는 생각치도 못한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와라."
"괜찮아?"


"..."



멈춰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온다.



이건 심장이 우는 거다.



박현중 때문에 우는 거다...


의자 위에 삐딱하게 앉아있는 박현중. 비틀거리는 내 팔을 잡아 부축해주는 지안.




"너 어디 아프냐?"
"아니요."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병기라는 걸 알게 하는 건 싫었다.
왜?


박현중 이니까.

이유는 그것 뿐이다.




"애가 안색이 새파랗네, 병원 안 가봐도 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접때, 네가 가르켜준 계단으로 들어왔지. 뭐, 문은 저 녀석이 대신 열었지만."




지안을 쳐다보며 말하는 박현중.
그래, 지안은 이 건물 종합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신기한 눈으로 방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박현중이다.




"좀 괜찮아? 두통약 가져다 줄까?"

"됐어."




난 팔을 붙잡고 있는 지안의 손을 쳐냈다. 이를 악 무는 지안이 보인다.


내 고통, 내 괴로움 아는 척 하지마.
역겨우니까. 동정 따위 질색이야.



녀석의 손을 쳐내는 바람에, 몸이 균형을 잃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은 나다.



재빨리 내 앞으로 다가와서 등을 내미는 한 사람.
커다랗게 변한 내 눈은 한 사람만을 주시하고 있다.




"안돼겠다, 병원 가자. 업혀."

"..."



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하얀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지금 내게 등을 내밀고 있는 박현중.
지안도 날 업어준 적은 없었는데.


예전에도, 앞으로도 내게 등을 내밀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마법처럼 박현중의 등으로 손을 뻗어 업히는 나.




이 느낌, 왠지 낯익다.




"병원은...안돼요."



급하게 계단을 향해 가려는 현중의 앞길을 막는 지안.
이유는 아마도 외부 병원은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쟌 회장님의 지시 때문 일거다.


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네 눈에는 애 죽어가는 거 안 보여?! 나와!"
"병원은 안돼요."

"안 나와?"
"...됐어, 박현중 됐어...아니, 선생님 됐어요."


"내가 안돼!"
"하나도...안 아프다."



고함을 질러대는 박현중이다.

걱정해주는 건가?



어제 그렇게 화낸 주제에.
이상한게도 기분이 좋다.



"병원 가자."
"...병원은 안돼."

"왜?!"
"...안돼."



병원으로 가면, 내가 병기란 사실을 들키게 돼.
그런 거 싫다.


세상 사람 다 알아도, 박현중이 아는 건 싫다.




* * *



"대체 왜 안가겠다는 거야?"
"싫어."

"설마 주사 맞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지?"
"...나 어린애 아니다."



나 참, 미치겠네. 병원도 안간다, 약도 안 먹겠다. 내 속 좀 태우지 말아라, 지유야.
겨우 등에 업혀 놨더니,

병원 가겠다는 말에 슬그머니 내려오는 지유다.



얼굴을 백지장 마냥, 창백해져서는.
검은 도복 때문인지 지유의 뺨은 더 하얗게 보인다.




"가자아."
"...싫다."


"제발 가자."
"...안해."




어르고 달래도 꿈쩍도 안 하고, 침대 위로 드러눕는 지유다.
그리고 쇼파에 앉아서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는 지안이 있다.


흥, 왜. 질투 나냐?



"...유야, 나가볼게. 선생님도 이제 가보세요."



내가 가던 말던 네가 무슨 상관이야!
문 손잡이를 돌리며, 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지유.


그리고 녀석은 입모양만으로 내게 말했다.



'위를 조심하세요.'



위?


이런.


위를 쳐다보자마자, 내 시야에 잡힌 건, 까만 몰래 카메라 한대.
으아, 대체 여기 뭐 하는 집안이길래 이래?!


재빨리 벽으로 다가가 착 달라붙는 날 보더니, 싱긋 웃고는 나가는 지안.



제법 괜찮은 녀석이라니까.




지안 녀석이 나간 후 5분이 흘렀을까. 침대에 등돌려 누워있는 지유와
아직까지, 몰래카메라의 영향으로 벽에 착 달라 붙어있는 나.


방 안에 고요한 침묵이 맴돈다.




"자? 나, 갈까?"




넌지시 침대 위의 지유에게 말을 건네 본다.




"..."
"병원 안가? 정말로?"


"안가."




끈질긴 녀석. 잠든 줄 알았더니 끝까지 안 가겠다고 버팅긴다.

누구 애간장 태울 일 있어?




"근데 저 위의 감시 카메라 말인데, 설마 너 옷 갈아입는 것도 봐?"
"..."



힐끔 위를 쳐다보는 지유.




"아마도."




발끈.
아마도 라는 말은 본다는 뜻이지?!


난 위의 감시 카메라를 박살 내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대체 왜 감시를 하는 거야? 완전 교도소가 따로 없구만.




"...가봐라, 박현중."

"이씨, 존대를 하려면 제대로 해! 이랬다, 저랬다..."



"가보세요, 선생님."

"..."




역시 그냥 반말이 낫겠다. 지유야.




"너, 어제 그 일 때문에 삐졌지?"

"아니."


"맞잖아."

"아니거든."




휙, 다시 돌아눕는 지유다. 난 녀석을 보며 꽤 귀여운 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If I love you, what would you do?" (만약 내가 널 사랑한다면, 어떻게 할래?)



못 알아들을 것을 감안 하고, 나의 끝내주는 발음을 굴렸다.
다시 침묵으로 가득 메워지는 방안.



아, 썰렁한 분위기는 질색인데.




"그럼, 나...나, 가볼게."




슬금슬금, 계단으로 연결된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리는 나.
그 때 등 뒤에서 들리는 지유의 목소리.



"If you love me...I don't know..."




'만약 네가 날 좋아하다면, 나도 잘 몰라.'


아차, 이 녀석이 세계어에 능통하다는 걸 깜빡했다!
밀려오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문을 여는 나.


그러나 곧 지유의 거친 숨소리가 계단으로 향하는 내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하아...하아..."




갑자기 소풍 때 있었던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피를 토했었던 지유.

본인은 끝내 포도주라고 우겼지만, 눈에 비친 그건 틀림없는 피였다.




"병원가자."
"안 가."


"내가 데려 간다."




끝까지 안 가겠다고 말하는 지유에게로 다가가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놀란 눈의 유가 보인다.

그리고 까만 도복을 입은 지유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



생각대로 엄청 말랐구나.




"뭐하는 건가?"
"가자."


"싫다."
"됐어, 나 이제부터 내 맘대로 할 거야."


"놔!"




소리치는 지유. 하지만 난 그대로 지유를 업어든 채로, 계단을 향해 뛰었다.
감시 카메라?

그것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나다.


따라올테면, 따라오라지.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예상한 것과 같이 애앵_ 하고 건물 전체에 울리는
경보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소리칠 기운도 없는 지, 얌전히 등에 업혀있는 지유다.




"G-you is disappeared!!" (지유가 사라졌다!)




외국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만큼 내 걸음도 빨라졌다.




"...거봐."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힘없는 지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박현중이 어떤 놈인지 보여줄까?
나 포기라는 거 모르는 놈이거든?




"나, 여기서 너 데리고 나간다."
"...데리고 나가면."


"병원 가야지!"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니가 의사야?!"
"...눈 감아봐."


"왜?!"
"살고 싶으면 눈 감아."




뭐? 살고 싶으면 눈 감으라고?
당연히 살고 싶단다.


이미 저 검둥이들이 나와 너를 발견하고 달려오니 말이다.




"지금 뛰어도 모자랄 판에, 눈을 감으라고?"
"감아."


"왜?!"
"감으라고 했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지유의 목소리에 난 왠지모를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눈을 꼬옥 감았다.

에이, 될대로 되라. 내 생명선은 그리 짧지 않을 테니까.




"감았나?"
"그래."


"30초 뒤에 눈 떠."
"그래."




30초?

1...2...3...

28...29...30...



초조함을 뒤로 하고 마음 속으로 30초를 헤아리고 눈을 떴을 때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벚꽃이 가득한 공원.


순간 멍해져 버린 머릿 속.




"내려줘."



내려달라는 지유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린 나다.



"여긴 어디야?"
"몰라, 서울...어느 곳이겠지."




어떻게...이런 일이.

아주 잠시. 말 그대로 30초 동안만 눈을 감았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어안이 벙벙해진 날 보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린 지유다.




"야!"




창백해진 그녀를 업고 난 미친 듯이 병원을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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