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06]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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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풍 가는 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등교를 한 지안과 지유.
지안 녀석의 뺨이 시퍼렇게 멍든 걸 보면,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다.
은근히 양심의 가책이 느끼게 하는 군.
"흠, 오늘은 빠진 사람 없지? 야, 안내문 돌릴 테니까 받아라."
나를 빤히 쳐다보는 지유의 시선이 느껴진다.
쟨 왜 쳐다봐? 사람 얼굴에 구멍 뚫리겠네.
안내문을 나누어 주는데, 받자마자 시작되는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가 울린다.
"와, 소풍이다!!"
"근데 왜 또 에버랜드예요?! 맨날 거기 밖에 안가냐!"
"훗, 불만 있는 사람은...?"
"저요!"
"2층으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꺾은 다음에 들어가라."
"거긴 교장실이잖아요!"
불만 있으면 교장 선생님께 직접 가서 말씀 드려라. 나에겐 아무런 힘이 없단다.
느긋한 미소를 날려주며 천천히 퇴장하는 나.
앞문을 여는 내 귀에 지안과 지유의 말소리가 들린다.
“유야, 갈래?”
“…”
“가기 싫으면 내가 말씀 드릴게.”
“…가.”
지유의 작은 대답이 왜 그렇게도 기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안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쾅”
“우하하,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
“…생각 정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앞문에 쾅 하고 머리를 부딪힌 나.
곧바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것들이.
그러나, 나는 쪽팔림을 아는 사람이었다.
후다닥, 앞문을 세게 닫고, 교무실로 향하는 나.
교무실 문을 턱하니 열자마자, 정면으로 새우깡 하나를 아작아작, 먹고 있는
정선배가 보인다.
교무실에서 저러고 있지 말지.
주위 선생들의 눈도 안 보이나, 저 인간은.
“왔냐!”
“예.”
“그래, 어젠 좀 괜찮았니?”
“하하, 괜찮을 리가…”
억.
내 발을 지그시 눌러 밟는 이 여자.
아악, 지금도 허리에 파스를 떡하니 붙이고 있는 상황인데.
“그나저나 2학년, 내일 소풍이지!”
“예에.”
“몇시 출발이니?”
“가시게요?!”
나를 향해 번뜩이는 저 눈빛이란, 내일 자기도 따라가겠다는 말이다.
안돼! 어딜 따라와!
“내일 아침 10시에 출발이에요.”
“그래? 좋아!”
흥, 사실은 9시 출발이랍니다.
후환이 두렵긴 하지만, 내일 하루종일 시달리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나저나…
지안과 지유는 대체 어떤 집에서 자란 건지,
그 오피스텔 안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출석부에 붙어 있는 지유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나.
지안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
“…궁금해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깜짝이야!
낮은 음성의 목소리. 깜짝 놀란 난, 벌렁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옆을 쳐다보고,
그런 내 옆에는 지유의 차가운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언제 온 거야?
너 그러고 서 있으니까, 진짜 귀신 같다.
“흡, 무슨 일이야?”
“…궁금해 하지마.”
“뭘!”
“내 사진 구멍 나겠다.”
눈치만 빠른 녀석.
황급히 출석부를 덮고, 녀석을 향해 해맑게 웃어 보이는 나.
내 아름다운 미소를 보던 지유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어느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 무슨 일로…?”
“소풍.”
“말 짧게 하지마, 욘석아.”
“명령하지마.”
허, 기가 막힌 녀석일세? 명령이라니!
거기다, 지금 명령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란다.
난 기가 막힌 얼굴로 지유를 쳐다본다.
“…선생 이름.”
“뭐?”
“이름.”
어이없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말한다.
이름, 이라고.
지금 이름 가르쳐 달라는 건가? 아직까지 담임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
이런 괘씸한!
“이름 가르쳐 달라고 온 거냐?”
“…”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유.
이제 보니, 귀여운 면도 있군. 근데 대체 내 이름은 왜 궁금한 걸까.
난 문득 눈 앞의 이 여학생을 놀려주고 싶어졌다.
“내 이름은 알아서 뭐 하려고?”
“…하니까.”
“어?”
“궁금하니까.”
별다른 표정을 기대했던 나와는 달리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책상 한 귀퉁이를
힐끗 쳐다보는 지유.
‘박현중’
아차. 선생 자리에는 선생의 이름표가 끼워져 있다.
그제야 재빨리 이름표를 가리는 나의 서툰 동작.
순간, 잘못 본 걸까.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려 교무실을 빠져나가는 지유.
올려 묶은 긴 머리가 찰랑이며 그 뒤를 따라 간다.
쟤, 웃을 줄도 아는 구나.
오늘 처음 알았네.
“헤이~ 총각, 뭐하시나?”
깜짝이야! 또 누군가 했더니, 흐흥_하는 콧소리를 내며 맞은 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정선배다.
내년엔 기필코,
저 인간과 나, 둘 중 하나는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내가 교육부 장관님을 찾아가 싹싹, 비는 한이 있어도!
“출석부 보는 중이죠.”
“오호~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갛게 되셨나?”
“생사람 잡지 마요!”
“아까 걔가 지유란 애지?”
“예.”
“흐흥, 걔가 뭐래? 연락처 가르쳐 달래?”
상상하는 것 하고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질 하는 나와 궁금하다는 듯이 팔꿈치로 쿡쿡 찌르는 선배다.
거기 아프거든요. 은근 슬쩍 폭행을 가하지 말란 말입니다.
아무튼 난 이날부터 지유에게 이름을 알려준 것에 대해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된다.
“현중아.”
“…후.”
“현중아.”
“너 진짜 까불래?”
방과후.
텅텅 비어있는 복도 사이로 내 이름을 부르는 이 건방진 소녀는
지유다.
제길. 이름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어!
“야! 너 지안은 어딜 가고 혼자 남아서 이러는 거야?!”
“그냥.”
난 그 밉살맞은 지안 녀석이 너무 너무 보고 싶어졌다.
내 눈앞의 이 아이를 제어할 수 있는 건, 그 녀석 뿐인 것 같다.
“소풍은 가면 재미있는 건가?”
“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수업을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이 이 나라 아이들의 현실이야!
혹시 아는가?
학교 가기 제일 싫어하는 나라 1위 한국.
그러나,
출석률 세계 1위 한국.
훌륭한 교육 방침이지.
교무실까지 바짝 나를 뒤따라 온 지유. 조금 귀찮긴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뭐라 할까, 사나운 동물을 길들인 느낌이랄까?
그리고 역시 선생보다는 이름이 낫다.
“너 집에 안가?”
“갈 거다.”
“후, 너 때문에 내가 피곤하다. 왜 자꾸 쫓아다녀?”
“잘난 척 하니까 기분 나쁘다, 나.”
“누가 잘난 척 이라는 거야!”
“박현중 잘난 척 한다.
아악.
취소! 난 엄청 기분 나쁘다.
그리고 어느 새 또 쳐다보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지유다.
“…사라지는 거 하나는 진짜 빠르다니까.”
차 태워다주려고 했는데.
* * *
“뭐 하느라 늦었어?”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할, 이유 못 느낀다.”
“지유!”
“더 이상 내 일에 간섭하지마. 나 짜증난다.”
지안은 알고 있었다. 요사이 눈에 띄게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온 것을.
그리고 지유의 변화의 원인은
다름아닌, 학교 선생이라는 것을.
부드러운 금발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 넘기며 지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안.
항상 곧은 자세,
하지만 무표정한, 그녀의 눈에 숨겨진 슬픔까지
보아 온 지안.
“…유야.”
“나가.”
“난 네가 좋아.”
“난 네가 싫다.”
싱긋,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안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변하지 않은 지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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