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일애

글/그림 :

에델바이스 [05]

일심일애(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5.



기둥 옆에 바짝 붙어 있는 나.
으아아_ 내가 대체 어쩌자고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들어온 거야.

지하 주차장에 버려둔 나의 소나타는 무사하려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뽑은지 1년도 안된 새건데. 우리 어머님께 맞아 죽겠군.




나중에 지유 녀석에게 톡톡히 책임을 물어야지.




"뚜벅 뚜벅."




겨우 한 숨 돌리나 했더니, 텅빈 복도 끝으로부터 사람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아악, 신이시여 살려만 주십쇼,
아직 장가도 못 가보고 죽긴 싫단 말입니다!



.
.
.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구겨지는 나의 몸뚱이.

심장은 미친듯이 뛰는데.





"...선생 뭐하나."





어라?

이 목소리는!!



하느님도 총각은 살려두신다고, 정말 이 조마조마한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들려오는 지유의 목소리.

기둥 뒤를 돌아보자 마자, 창백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지유가 있다.




가뜩이나 귀신같이 생긴 녀석이, 그 검은 도복은 뭐야!





"하하...안녕."

"침입자가 선생이네."





뜨끔.

난 내가 이 건물로 들어온 순간 부터, 애앵_ 하고 울리는 경보음의 원인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미는 지유.


일어나라는 뜻인 것 같다.





"여기까지 왜 왔나."
"선생으로서!!"


"웃겼다, 방금."





무안해져버렸다.
이 아이는 농담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잊었다.


무안해진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잠시 자신의 손을 쳐다보던 지유는 손을 거두고, 따라오라는 듯 몸을 돌린다.





"야, 어디가!"
"...여기 있으면 들킬 것 같아서."

"나 도와주는 거냐!"
"불쌍해서."





아악. 난 불쌍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지금 내가 널 구해주러 온 상황이라고오!


그래봐야 내 마음속에 있는 외침은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절뚝 절뚝, 지유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멈춰 서더니 옆에 있는 문으로 나를 휙 밀어 넣는 지유다.



깜깜한 방 안.




"야! 너 뭐하는..."




그녀의 하얀 손이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닥치고 있으란 소린가?!


바둥바둥 거리는 나를 몸으로 꾹 누르는 지유.


땀냄새에 살짝 배어 나오는 연한 쟈스민 향기.
두근 두근.



뭐야, 이거? 나, 왜 가슴은 뛰고 그래?




"...예, 이쪽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잡아서 돌려보내. 여차하면 죽여도 상관없다.


"그래도 명색이 교사인데, 의심받지 않을까요?"

-일단 찾고 보란 말이야!





까만 썬그라스를 낀 남자가 지나가는 것이 문틈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난히 그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뭐? 죽여?! 나를?
선생으로서 가정방문 온 나를!




"...하아."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내 입을 꾹 누르고 있던 지유의 손이 스르륵 내려가고,
거친 숨을 내 뱉는 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내가 너 살린거다."
"...여기 대체 뭐하는 곳이냐?"


"비밀."
"나 정말 살려보내 줘도 되는 거야?"




귀찮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리는 지유. 뭔가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린 난
궁금한 질문들을 쏟아 붓기 시작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건, 내 앞에 서있는 그녀가 무표정하다는 사실.




"대답하기 싫다면 안해도 돼. 하지만 난 네 선생이야."

"..."



"내년엔 어떨지 몰라도 일년은 내가 널 책임져야 한다고!"

"..."



"오늘 일,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

"아니."




말이 안 통한다.
아아_ 이런 성격이란 걸 알면서 내가 대체 뭘 바란 건가.


하지만 심하게, 가슴이 뛰는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 때문에 눈 앞의 지유가 제법 보인다.




"그리고!!"
"?"



아직 더 할말이 남았냐 라는 표정의 그녀.
혼자 가슴 뛰는 내가 너무 한심해져서 울컥, 해버렸다.




"내가 널 구하러 와 준건 말이야!"
"...?"


"니가 머리가 길잖아!"
"자르기 귀찮아서."




그게 아니라!




"머리가 길어서 전지현이랑 닮았잖아!"
"걔가 누군데?"


"그냥 되게 이쁜 애 있어! 아무튼 내가 널 구하러 온건 전지현 때문이야!"
"얼씨구."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릴 주절거리는 거냐, 박현중.
그나마 캄캄해서 다행이다. 빨개진 내 얼굴이 안 보일테니까.


그나저나, 여긴 왜이리 더워!




"...이유는 이상하지만."
"뭐?! 어떤데!"


"...고맙다."
"뭐?"


"엄청나게 고맙다."




펑, 하고 머리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박현중, 드디어 니가 정신이 나가다 못해, 뇌가 터져버렸구나.


나의 뇌 세포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는 건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 버렸다.




"그나저나...유야..."
"왜."

"나 어떻게 나가냐?"
"...불쌍하다, 선생."




결국 지유가 안내해준 비상계단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 온 나.
나의 하얀 소타나가 나를 반긴다.


보고 싶었단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혹여나 누가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확인한 후에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나다.

오늘은 오전수업만 있었는데, 난 대체 금쪽같은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쓴 거지?




차 안에 둔 휴대폰은, 부재중 다섯통이 걸려와 있었다.
전부다 발신자 '정춘자'


제길. 그 아줌마 단단히 화났겠군.




학교


"...니가 죽길 각오하고 한 짓이지?"

"아니요."


"어딜 감히 선배 말을 씹어 먹어?!"

"잘못 했어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는 나.
저 인간을 대학시절 격투동아리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난 조금 더 편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결국 정춘자 아줌마는

고난이도의 허리꺽기 기술로 나를 꺽어놓고는
유유히 퇴근했다.





"아오, 그 아줌마 힘 한번 세요..."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라던데, 정춘자 사람 한번 제대로 패고 갔다.
아직도 삭신이 쑤시니.


그나저나 왜 대체 내가 숙직 당번일 때만 재수없게 비가 내리는 거야!




"쏴아아아_"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비가 오늘따라 엄청나게 무섭다.
피같네, 꼭.




"...무서워."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교실 안을 비춰보며 천천히 걷는 나.
으흑, 다른 선생님과 같이 올걸.

오늘따라 유난히 여고괴담이 생각나는 군.




“…”




뚜벅뚜벅, 혼자 걷고 있는데 저 앞에 뭔가 검은 물체가 아른거린다.
처녀 귀신인가? 아악, 난 아무런 죄도 없단 말이야.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


새하얀 얼굴,
천천히 걸어오는 그 물체의 정체는.




“지유?”

“…”




욘석아, 제발 그 머리 좀 묶고 다녀라, 사람 심장마비 걸리겠다!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심호흡을 하는 내 코앞까지 바짝 다가온 그녀.




“넌 대체 이 시간에 학교에는 왜 왔어?!”

“그냥.”



“아주 맞먹어라, 맞먹어!”

“오늘 고마웠다.”



“아까 몇 시간 전에도 그 말 했잖아!”

“…”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더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지유.
미처 잡을 틈도 주지 않고

어느 샌가 휙 사라져 버린 그녀다.




“…이상하단 말이지.”




난 아직까지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나의 교사생활 이래,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건방진 전학생’으로 기억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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