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04]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4.
"오늘 일에 대해 해명할 수 있나?"
"아닙니다."
"지금 뉴스 속보게 뭐라고 떴는지 알아? 청와대 침입자, 범인은 킬러, 라는게 떴다."
"죄송합니다."
"내가 언제 사람을 죽이라 했나? 그런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
"아버지! 사실은 그게 아니라!"
척, 말리려던 지안을 저지시키는 그녀의 손.
뭔가를 말하려던 지안은 지유의 냉철한 눈빛에 가만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금발머리의 중년의 남자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G 쟌 니젤론.
G 그룹의 총수, 세계적인 킬러이자 정치가.
호적상 지유의 양아버지인 사람이다.
"...할말은 없습니다."
"방으로 가라."
"예."
"아버지!"
"시끄럽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지유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여전히 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안.
"위잉"
검은 도복을 입은 지유의 몸이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초음파 고문이다.
오랜만에 받는 처벌이라, 하얀 얼굴은 이제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지유의 머리를 무겁게
죄어오고 있었다.
한 30분이 흘렀을까, 지유의 검은 도복이 식은 땀으로 젖어 들고,
그녀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아주 예전의 아득한 꿈을.
.
.
.
“아버지! 지유는 잘못한 거 없어요!”
“지안! 저리 가지 못하겠느냐?!”
“지유를 풀어주세요!”
”저리 가래도!”
어릴 때의 지안과 자신이 있다.
아아…
지유는 생각해냈다.
지금 보이는 장면은 일곱살 무렵, 첫 임무에 실패했을 때
처음으로 처벌을 받은 날임을.
굳게 닫힌 문 너머에는
지안의 울음 섞인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지유는 눈물을 잊어 버렸다. 아주 오래 전에.
그래서 그녀는 눈물 대신, 웃어 버린다.
“하하…”
* * *
“아쭈? 이것들이 무단결서~억?”
“선생님 긋지 마요!”
“시끄러워! 내가 출석부에 긋겠다는데, 너희가 왜 그래?!”
“잘생겼잖아요!”
나참, 잘생겼다고 무단결석까지 봐주란 말이냐.
빨간 볼펜을 들어, 35번과 36번을 향해 내려가던 손이 잠시 멈춘다.
정말 이 녀석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둘이 나란히 무단 결석이라니.
집으로 전화를 해봐야지.
선생의 권한으로 전화를 걸어보는 거다.
그대로 교무실로 향해, 전화기를 손에 잡는 나.
어느새 옆에는 막대 사탕 하나를 불고서 나를 빤치 쳐다보는 정선배가 있다.
제발 저리 좀 가라, 이 여자야.
인상을 확 구기는 나.
“디카프리오한테 전화하는 거야?”
“예, 저리 좀 가요.”
“왜~”
“빨리 안 가면, 교장실 토마토 따먹은 거 선배라고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릴 줄 알아요!”
“치사하긴.”
저 인간은, 얼마 전에 교장 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토마토 줄기에 손을 댄
혐의가 있다. 그 일로 교장 선생님께서는 자물쇠를 새로 바꾸셨지.
입을 비쭉 내밀고, 짧은 단발머리를 손가락에 비비꼬며 사라지는 정선배.
그제야 한숨을 쉬며 신호음이 가는 전화기를 귓가에 바짝 들이대는 나다.
뚜르르_ 뚜르르
신호음 소리가 들린다.
“찰칵”
-여보세요?
“아, 저 지안, 지유의 담임 선생님인데요, 오늘 둘 다, 학교를 안 와서요.”
-지유 아가씨는 아프셔서…지안 도련님은 가셨을 텐데요?
“네? 아, 예…잘 알겠습니다.”
…아프다고?
결국 문제는 지안 녀석이로구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맨날 태클걸던 학생이 없으니 허전하긴 하구나.
그럼, 슬슬 불량학생을 잡으러 가볼까?
오후 수업도 없겠다. 한국에 처음 온 녀석이니 길도 잘 모를 텐데.
어쨌든 나는야, 선생!
후두둑_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교문을 나서자마자 가는 빗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길, 제길.
난 비오는 날이 제일 싫은데.
“…선생…님?”
왁스를 바른 머리에 떨어진 빗방울을 털고 있는 내 귀에
유난히 목에 잠겨 있는 지안의 목소리가 들리고,
눈 앞에는 비에 젖은 채로, 싱긋 웃고 있는 지안이 보인다.
“배짱한번 좋다, 지금 지각을 해놓고도 뻔뻔한 녀석.”
“…어떡해요.”
“뭘 어떡해, 출석부에 줄이 하나 쭈욱_ 그이는 거지.”
“지유…어떡해요.”
“뭐?”
“…지유.”
털썩.
안 그래도 허연 놈이, 아예 백지장이 되어서는 그대로 털썩, 하고 도로에 쓰러져버린다.
아악! 여기서 쓰러지면 나더러 어쩌란 거야!
“빵빵_”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려대는 자가용 소리에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도로 바닥에 뻗은 지안을 들쳐 메고, 다시 학교 양호실로 돌아가는 나.
“어머, 어머! 선생님 무슨 일이예요?!”
“몰라요, 양호 선생님 얘 좀 잘 돌봐주세요! 저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예에, 다녀오세요.”
검은 안경테를 낀 놀란 눈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지안을 바라보는 양호선생.
일단 한시름 놓은 난, 그대로
학생 기록부에 적혀있는 지유의 거주지 ‘제너멀 오피스텔’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야! 너 어디 가냐?!”
제길. 정선배다.
2층 창문에서 주차장을 향해 손을 훠이 훠이, 흔드는 정선배.
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잡기 전에, 난 그대로 교문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야! 너 지금 나 쌩깠어?!”
교사란 사람이 말투가 저게 뭐야. 여하튼 난 다녀오면, 죽었군.
가녀린 여교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태권도 검은띠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대학시절 얼마나 많이 두들겨 맞았던가.
난 과거를 회상하며 몸을 떨었다.
“제너멀 오피스텔이라.”
내 기억으로는 거긴 끝내주는 재벌들만 사는 오피스텔인데.
끼익_
거대한 빌딩 앞에 나의 검은색 소나타 차가 멈춰 섰다.
오피스텔 앞엔 보기만 봐도 아찔한 검은색 정장 입은 깍두기들이 바글바글.
제자를 위해서!
나는 선생이 아니었던가?
여차하면, 정춘자 아줌마를 부르는 거다.
그 아줌마, 태권도 실력은 쓸만했으니.
달칵,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나.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깍두기 무리들.
썬그라스를 낀 이유는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함인 것 같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지유 학생이 있나요?”
“…누구시죠?”
“저…학교 선생님인데요.”
박현중.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은 몸집에 내심 긴장하다.
학교 선생이란 말에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위아래 훑어 보더니,
무전기에 대고, 중얼중얼 거리는 깍두기.
“지유 아가씨는, 지금 만나실 수 없습니다.”
“꼭 만나야 되는데요?!”
교사가 학생을 만나겠다는 데, 왜이리 장애물이 많은 거냐.
그렇다고 물러설 박현중이 아니지!
“실례할게요!”
퍽_
그대로 내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깍두기의 배를 주먹으로 올려치고,
오피스텔 안으로 재빨리 뛰는 나.
어디서 이런 가상한 용기가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 아이.
눈동자가 죽어있는 아이.
* * *
“침입자가 있습니다! 예, 지금 계단으로 이동 중입니다.”
“…누구냐.”
“지유 아가씨의 학교 선생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만.”
“즉시 잡아서 돌려보내.”
…
아침이 왔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시끄럽다.
끝없는 초음파가 귓가에서 맴도는 와중에
바깥에서 지키고 있는 경호원의 목소리 사이로, 선생이라는 말이 들린 것 같다.
…왜 왔을까.
바보 같긴.
“바보…선생.”
지금도 충분히 괴로운데, 지금쯤 미친듯이 계단을 뛰고 있을 선생을 생각하니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식, 조금은 그 바보선생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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