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일애

글/그림 :

에델바이스 [03]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3.




난 지금 녀석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는 중이다.


얘네들 쌍둥인가? 생일이 같네. 5월 10일이라, 다음달이로군.
사는 곳, 서울시 종로구...제너멀 오피스텔.



사는 곳도 같고, 생일도 같고...하지만 쌍둥이라기엔 뭔가 닮지 않은 둘이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의 기록이 없다. 거기다 기부금 입학.
러시아 유학, 독일 유학, 미국 유학.


특기 세계어 통역, 특기사항?
지유 아이큐 135, 지안 180. 이것들 천재 아니야?




"후, 골 때리겠네."
"뭐가?"




옆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미술 선생이 종이컵을 물고서 내게 묻는다.
이 마녀같은 여자는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선배다. 생긴건 정상인데, 하는 짓은 엽기인 여자.




"아, 저희 반 전학생들요. 수상쩍은 부분이 많아서요."

"아아, 그 끝내주는 애들?"



"끝내주다뇨?"

"집안 배경 죽이고...뭐, 걔네들 진짜 한 미모하던데? 홍홍, 남자앤 내 취향이더라고?
걔 디카프리오 닮지 않았냐?"



"전혀요."
"짜식, 너 질투하는 구나? 그래, 그래. 너도 이뻐."




그 문제가 아니거든요, 선배?

내가 미친 거다. 이 변태같은 여자한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다니.


이 인간은 미소년 애호가답게 교무실 자기 책상에 일본 아이돌부터 시작해,
전교생 중, 반반한 미소년들의 사진을 죄다, 붙여놓았다.





"선배, 시집은 안가요?"

"시끄러워, 내 나이가 몇인데!"



"내 모레면 30살 아니었던가? 아직도 착각을 하고 계시네요, 정춘자씨."

"아악! 정 봄이라고 부르지 못해?!"




본명 정춘자, 올해 나이 28살.
전직 미술학원 강사. 물론, 학원생에게 집적대다가 퇴출.

취미 미소년 사진 수집. 아주 광적인 스토커 기질이 있음.




"너 이자식, 내가 너의 과거에 대해 다 까발리겠어! 거기 서라!"




싫수다. 그러게 왜 남 진지한데 방해하래?

교무실에서 혼자 괴성을 지르고 있는 정선배를 뒤로 하고, 담배나 피울 겸
학교 뒷산을 오르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솔솔, 나무들 사이를 타고 오르는 담배연기 서너개가 보인다.





후, 오늘도 한탕 해볼까?





스윽, 나무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자 마자,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몇 놈이 구름과자를 씹고 있다.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네 녀석.




"4반에 전학온 애 봤냐?"

"아, 소문만 들었어."


"진짜 이뻐. 근데 애가 살벌하더라. 말하는데 막 냉기가 뚝뚝 흐르더라니까."

"그게 다 얼굴값 하는 거지."




지유 녀석. 전학 온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씹히고 다니냐.

교무 회의 때문에 쓰고 있던 무테 안경을 살짝 올리고서, 씨익 웃는 나.
슬슬 시작해볼까.





"안녕, 아이들아."

"아악!"



"놀라긴."

"서...선생님?! 언제부터 계셨어요?"



"훗, 오래전부터. 야, 장희석! 담배 한 갑만 내놓고 가라. 그럼 눈 감아주지~"

"제 담배 비싼 건데요!"



"어쭈? 반항이냐? 나, 이래봬도 학생과 선생이랍니다."
"여기요..."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서 개기길 개기니.


학생과라는 말에 고개를 숙이고 다다닥, 언덕을 내려가는 아이들.
푸릇푸릇, 이제 막 돋아난 잔디 위에 말보로 담배가 놓여져 있다.




"짜식들, 좋은 거 가지고 있었네."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무는 나.
하늘 푸르고, 햇볕 따뜻하고, 이 불편한 정장만 아니라면, 딱 좋은데.




"선생이 삥도 뜯나?"




쿨럭 쿨럭.
나오던 담배 연기가 도로 넘어가 버렸다.




이 목소린!

휙 고개를 돌린 곳엔 언제 나타난 건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쪼그리고 앉아있는 지유가 있었다.
후_ 하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녀에게 다가가는 나.


내가 다가갔을 때,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뭐하니?"
"꽃 본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넌 지금 내 교권에 도전하고 있어."
"그런 적 없다."

"이봐, 이봐. 지금도 넌 나한테 도전하고 있는 거라니까?"
"..."




아래를 보고 있던 눈을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지유.
당황한 나.




"왜...왜 쳐다봐?"
"선생, 잘 생겼다."

"훗, 내가 원래 한 미모해...그런게 아니라!"




뭔가 기분이 되게 좋은 것 같다. 잘생겼다는 소리는 지겹게 들어왔는데 뭘 새삼
얼굴이 빨갛게 되는 거지?

그러나 난 그녀의 다음 말에 인상을 확 구기고 말았다.




"지안 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런 어린애보다 내가 배 나아!



머리에서 살짝 화가 났음을 알려온다. 하지만 눈 앞의 이 멍한 여학생은
내 기분 따윈 궁금하지 않다는 듯, 바닥만 주시하고 있다.


대체 뭘 보는 거지?




"너 뭐 보는데?"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아, 솜다리?"
"에델바이스."


"솜다리가 에델바이스라니까?"
"..."


"민망하지, 너?"
"아니."



벌떡 일어나더니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린 지유.


정말 귀신인가? 진짜 사라지는 속도 하나는 빠르다니까.
그런데 난 한번도 그 아이의 표정을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에델바이스라..."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이제 막 핀 솜다리 꽃이 이었다.
예감이었을까.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는 에델바이스가 꼭 지유와 닮아 보인건.




* * *



"지금 가는 거야?"
"그래."

"조심해."
"..."




한국에서의 첫번째 임무.



청와대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다.
다행이다. 미국 백악관에 잠입하라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거긴 총알이 빗발친다.



몸을 숨기기 편한 검은 색의 점퍼와 타이즈를 신고, 뒷 주머니에 만약을 위한, 단도와 가스총을 꽂았다.
높게 묶은 머리, 코와 입을 가린 검은 천.



그대로 난 빠르게 순간이동을 사용해, 청와대까지 이르렀다.



넓은 문이 보이고, 예상대로 경비로 예상되는 열댓명의 사람이 있다.




"휘익."




저렇게 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도, 담 안으로의 순간이동 쯤은 어렵지 않다.
내가 제일 두려운 건.




"침입자다!"




손전등 불빛이 시야에 아른 거린다. 까만 양복을 입은 경호원 여섯명이 이쪽으로 뛰어 온다.
난 재빨리 담 안으로 뛰어내렸다.



여기서 돌아가면, 난 임무수행을 실패하게 되는 거다.



내게 임무수행 실패란 없다.
그리고...
내가 제일 두려운 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애애애애앵___"




경보음이 울렸다. 그리고 사방에는 환한 라이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잡았...."




뒤에서 나를 잡으려 한 것으로 보이는 큰 키의 경호원 한명이 옆으로 픽 쓰러진다.
반짝이는 단도 하나가 왼쪽 가슴에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언제 내 뒤에 있었던 거지?




"...넌 항상 뒤가 비어서 안 된다니까."
"..."




경호원의 피가 묻은 손을 닦으며, 싱긋 웃어 보이는 지안이 있다.
나도 한 물 간건가.


녀석이 쫓아오는 것따위는 눈치도 못 챘다.

위잉_ 하고 울리는 경보음 소리에 우리는 재빨리 담밖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죽일 필요까진 없었어."
"...니가 위험했어."

"너 때문에 일이 더 커졌다. 생각도 못 하나?"
"아버지껜 내가 말씀 드릴게."


"이건 내 임무다."




차가워진 지안의 표정.
고맙단 소리를 바라고 한 짓은 아닐텐데.


휙, 뒤돌아서 걷고 있는 내게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손엔 살기가 없어. 알아?! 킬러로서 네가 가져야할 중요한 살기!"




돌아서는 내 뒤에서 소리치는 지안.
살기라.

오늘 처음 사람을 죽여본 주제에 나한테 설교하지마.




"오늘 일은 네 실수야. 킬러는 아무나 죽이는 거 아니다."




킬러는 필요에 의한 살인만 한다. 그런 거다.




"그럼 어떡하냐. 난 너 죽는 거 못 보는데, 너 아픈 거 보기 싫은데."




조금은 묘한 기분이다. 이 세상에 날 생각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날 위해 울어 준 인간은, 지안 밖에 없다.


지안을 향해 돌아 선 내 눈에, 녀석의 손등에 피가 흥건히 고여있는 상처가 보인다.



보나마나 착지가 서툴러서 생긴 상처일 거다.




"따라와."
"어?"

"다쳤잖아. 치료하게 따라오라고."
"응."




기쁜 표정으로 뛰어오는 지안이다. 이번 한번만 특별이다.
그리고 이날 새벽 난 견뎌내야 할 고통이 있었다.


풀빵웹툰

일심일애

4화-에델바이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