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02]
일심일애 (hood1230@hanmail.net)
(http://cafe.daum.net/love1hart1)
#2.
“…학교는 어땠니?”
“그냥 그럭저럭.”
이상한 눈으로 하루 종일 날 쳐다보는 담임만 아니었다면,
학교란 곳은 아주 조금은 괜찮은 곳이었다.
남학생들의 동경어린 시선. 여학생들의 질투의 시선까지 꽤 견뎌낼만 했다.
“맘에 안 들면, 다른 학교로 옮길까?”
“아니.”
“그래? 괜찮겠어?”
“어.”
지안은 내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걱정되는 듯 말했다.
너만 아니면 돼.
왜 하필 같은 반으로 배정 되서 신경 쓰이게 하는 지.
난 지안이 싫다.
어릴 때부터 그룹에서 날 감시하기 위해 내 옆에 둔 이유부터가 싫다.
"니가 날 싫어하는 것쯤은 알아!"
오늘도 도복을 갈아입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내 앞에서 알짱대더니,
급기야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
새삼스럽게 이제 아셨나? 내가 널 싫어한다는 걸.
"아는데..."
"알면 좀 나가주지."
"..."
"연습하는데 방해 돼."
너처럼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정말 싫거든.
나의 냉정한 말에도 이젠 면역이 된 건지. 꿋꿋하게 앉아서 나를 지켜보는
지안의 검은 눈동자.
회장님을 닮은 건 금발머리 뿐인가?
지안은 G그룹의 총수 쟌 회장님의 외동아들이다.
어디 선가 주워 온 나와는 달리 고귀하게 키워진 킬러.
킬러라 해봐야,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녀석은 작전만 세울 뿐, 직접 사람을 죽여본 일은 없다.
"...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 도중, 녀석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느껴지는 지안의 촉촉한 입술.
녀석의 기습 키스는 이미 익숙해졌다.
"네가 좋아서 킬러가 된 거야."
"...기분 나쁘다 나."
"...미안해."
"나가."
하나만 가르쳐 줄까.
넌 네가 원해서 킬러가 됐지만. 난 원하지 않아도 킬러가 되어야만 했다는 걸.
그러니까 내 앞에서 그런 말은 기분 나빠.
'아악!'
후. 오늘 낮에 본 담임이란 사람은 내 기억에 의하면, 어제 새벽에 골목길에서
본 남자가 맞을 텐데. 뭘 그리 놀란 걸까.
꼭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위잉."
잡념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 난, 초능력을 사용해 진공을 만들었다.
언제적이었지? 원하지도 않은 초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
다섯살인가.
진한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내 몸에 무언가를 집어넣었고
다음날 마취에서 풀려났을 땐,
어린 날의 내가 아닌 걸 깨달아버렸다.
진공.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바꾸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
내가 처음 배운 살인의 방법은 '진공'이었다.
"G에델, 이번 목표는 제이먼 회사의 총수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 왔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난 그룹에서 내리는 명령만 듣는 '에델'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듣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세계 최고의 킬러가 될 때, 너희 오빠를 찾아주마."
"정말요?"
"G그룹의 정보를 못 믿나?"
"...찾아주세요."
...
지안과 난 어쩌면 조금은 닮은 건지도 모른다.
지안은 날 위해서.
그리고 난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 *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와아! 선생님 짱!"
"남은 시간은 엎드려서 자도 괜찮다."
"예에!"
사실은 내가 졸리단다. 어젯밤에 게임하다 잠을 설쳤더니.
“바보선생.”
오늘따라 봄 햇살이 따뜻하길래 창가에 기대어 낮잠을 즐기는 나를 방해하는 목소리 하나.
번쩍.
예리한 나의 귀에 따르면, 뒤쪽에서 들렸는데!
누구냐? 나의 교권에 도전하는 가소로운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엎드리고 있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는 내 눈에
무효정한 얼굴로 턱을 괸 채, 나를 보고 있는 학생 하나가 보인다.
이거 전학생 아니신가? 네가 감히 교권에 도전을 해?!
“반항이냐, 전학생?”
“지유.”
조금의 당황함도 보이지 않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 지유! 지금 반항하나?”
“아니.”
어억. 어디서 말끝마다 반말이야!
내가 어머님 손을 잡고 초등학교 교문을 넘어설 때, 빛을 본 주제에!
자고로 싸움의 기초는 눈싸움이다.
빤히 날 쳐다보는 전학생. 덩달아 그녀의 커다란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는 나.
그렇게 1초, 10초, 1분이 지나, 서서히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안돼! 학생에게 질 순 없어!
“눈물 나오려고 한다, 선생.”
“누가 선생이야! 선.생.님.”
“선생.”
“교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저 지안이란 녀석은 이럴 땐 간섭하지않고 뭐하나?
옆을 힐끗 쳐다보자, 엎드려서 살포시 눈을 감고 있는 지안 녀석이 있다.
아악! 아직 교사 생활 1년에 여학생에게 매를 댈 순 없단 말이다.
“눈 감았어.”
“뭐?”
“방금 선생 눈 감았잖아.”
“언제! 안 감았어!”
“감았는데, 뭘. 한국에선 선생도 거짓말 하나?”
박현중 완패. 교사생활 1년 전학 온지 하루 된, 학생에게 말빨에 지다.
“넌 잠도 안 오니? 제발 자라.”
“…잠 안 잔지, 오래 됐는데.”
“뭐?”
“아니다.”
…뭐랬지, 방금?
순간 표정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는데.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예쁘게 생겼다. 이 아이.
저 무표정한 얼굴만 아니라면 꽤나 남학생들 울리고 다녔을 텐데.
날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지유.
봄 볕에 반짝이는 까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실려 흩날린다.
“…선생님?”
“어?”
깜짝이야!
언제 일어난 건지, 책상에 엎드린 채, 나를 나지막하게 부르는 지안.
“쉬는 시간 종쳤는데요.”
“아, 그래.”
쉬는 시간 종 쳤는데, 너 안 나가고 뭐하냐. 라는 눈으로 날 보는 지안.
틀림없이 녀석의 말투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마냥, 교실을 빠르게 나와 버린 건지 모르겠다.
교실을 나오고 나서야, 한숨을 내 쉬며 힐끔, 교실 안을 쳐다보는 나.
복잡하구나.
“선생님, 뭐하세요!”
“염탐.”
“네?”
“새로 나타난 라이벌에 대한 염탐 중이란다.”
지안.
녀석은 아무래도 내 최고의 (얼굴) 라이벌이 될 것만 같다.
건방진 녀석.
하지만 아까부터 자꾸만 뛰는 심장은 봄 기운에 맛이 간 건가.
두근 반, 세근 반,
“선생님, 출석부 교무실에 가져다놨어요.”
“어, 그래.”
“얼굴이 빨개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방금 뭔가가 스쳐 지나갔었는데.
…
왜 하필 지금 지유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나란 놈은 변태 로리콤이 아닌데?!
요새 잠을 설쳐서 제 정신이 아닌 거다.
그런 거다.
“선생님.”
“어?”
무슨 일로 저 녀석이 날 찾아온 거지?
교무실 문을 열며 들어오는 지안이 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근처 여선생들에게 꽃가루를 마구마구 뿌려대는 녀석.
얄밉다.
“무슨 일로 날 찾아 왔지?’
“…선생님.”
“?”
“지유한테 관심 있으세요?”
뜨끔.
아니…없는 건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지!
마음 속에서는 꼭 내가 무슨 잘못을 들킨 양 두근두근, 심장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그리고 눈 앞의 이 녀석은
그런 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 씨익_ 웃어 보이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관심만 가지세요.”
“뭐?”
“말 그대로 예요, 거기서 더 넘어오면, 저 아주 무서워 지거든요.”
손을 흔들며 교무실을 나서는 지안.
아악. 망할 전학생들! 왜 하나같이 건방진 거야!
가만 생각해보니까, 정말 열 받는다.
“네 이놈! 거기 서렸다!”
“아, 선생님.”
“?”
다다닥_ 녀석의 뒤를 쫓아 달리던 나. 복도 끝에 보이는 녀석을 향해
크게 소리치고, 스윽 뒤를 돌아보던 지안은 잊은 말이 생각난 듯 고개를 뒤로 돌린다.
마주 보고 있는 상황.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지안의 위압감에 눌린 난 할말을 잃은 채,
녀석을 쳐다보았고, 놈은 여전히 눈부신 미소를 입에 걸고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큐 180이거든요?”
“그래서 어쩌란 거야.”
“…적으로 돌리면 고생 꽤나 하실 텐데요.”
“뭐라?”
☜흥분하면 말이 안 나옴.
아아… 나의 찬란한 교사생활이 어두워 지고 있어.
양호실
“어머, 박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두통…약으로 하나만 주세요.”
“?”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다.
댓글 총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