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도보순례

글/그림 : 희야시스

[15일째] 생애 첫 노숙을 경험하다.

<시코쿠 88절 1200km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다. (25)>


- 생애 첫 노숙을 경험하다. -


2010. 4. 8. 목요일 / 맑음 (15일째)

5시 30분에 일어나 후다닥 세면과 가방 정리를 모두 끝마치고
6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맛깔스러운 아침 식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계란 후라이까지 순식간에 밥 두그릇을 뚝딱 먹었다.

오헨로 길을 걷고 나서부터 아침밥이 왜이리 맛있는지...
이른 아침임에도 밥 두그릇 먹는 것은 일도 아니다. ㅋㅋ



센마츠야상께서 걷다가 출출할때 먹으라며 커다란 과일까지 챙겨주셨다.

아... 이놈의 과일... 받는 것은 좋은데 무게가 장난 아니다.

그래도 아주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고맙게 받아 가방에 넣었다.

가방을 메고 떠나려고 할때 건배상이 식당으로 내려오셨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먼저 민슈쿠의 문을 나섰다.



언제 또 건배상을 만날 수 있을까???

나보다 발걸음이 빠르니 어쩌면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대문앞에서 안에 창문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하며 서둘러 선창장으로 향했다.



6시 25분에 민슈쿠에서 나왔는데 5분정도 걸으니 바로 선착장 앞이다.

6시 30분에 저 건너편에서 출발하는 배가 40분이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선착장에는 아직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에 휴게소 같은 곳이 보여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서 들어
갈수가 없었다.

추워도 밖에서 기다릴수 밖에...



35분쯤... 저 멀리서 츄상이 다가온다.

내가 이시간에 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모습이었다.

간밤에 춥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니 괜찮았다고 한다.



우리 이외에 등교를하기 위해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40분... 드디어 배가 들어왔다.

우선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린 뒤 배를 탈수 있었다.



배에 타자마자 자리에 앉은 츄상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데...
어라... 왼쪽 눈이 부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츄상 눈이 부었는데 괜찮아요???"

"정말???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음..."

야윈 몸이며... 거칠어지는 얼굴까지... 마음이 짠하다.



오랜만에 만난 교통수단 이동으로 완전 신난 희야...
쌍브이를 마구 날려 주었다. ㅋㅋ V^^V



우라도만을 건너기 위해서 10분정도 배를 타고 건넌다.

느긋한 맘으로 경치도 맘껏 즐기고 바닷내음도 맡고 아침부터 기분이 넘 좋다.

다시 배가 선착장에 닿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생~ 하니 달려간다.



배에서 내려 15분정도 걷다보니 33번절 셋케이지[雪蹊寺]가 눈에 들어왔다.

이절은 16세기 후반, 겟포우 오쇼가 어느날 밤, 울음소리와 함께 단가[知歌]
아래의 반이 들려 왔다.

겟포우는 능숙하게 시[詩]를 하지 못하여 성불할 수 없는 영혼이라고 생각해
시의 위의 반을 만들어 영혼을 도왔다.

그러자 울음소리는 그치고 요괴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또 이절은 88개소에 3개 있는 선사의 하나이다.



"희상 오늘은 어디서 숙박할 예정이야?"

"36번절까지 갔다가 국민숙사 도사에서 묵을 예정이예요.
전망 좋은 노천 온천과 도미토리 방에 스도마리로 묵으면 2,500엔
이라고 하니 그곳이 좋을 듯 싶어요."

"아~ 그곳!!! 여기서 예약하고 갈거지???
오늘 시간안에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겠는걸~"

"네. ^^"

경내에서 국민숙사 도사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경내를 빠져나왔다.



혹시나 경내에서 아가타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보이지가 않는다.

하긴 어제 들렸을테니깐...!

33번 절 앞에는 고치야 민슈쿠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 여기서 묵을 예정이라고 했었는데....
오늘 과연 몇시에 출발하셨을까???

부지런히 걷다보면 만날 수 있을까???



33번절에서 6.3km만 더 가면 34번절 다네마지[種間寺]가 나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츄상의 발걸음은 빠르다.
오늘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츄상만큼 빨리 걸어야 할텐데...
맘처럼 쉽지 않아 꽁무니만 보며 열심히 걷는다.



8시 40분 34번절 다네마지[種間寺]에 도착했다.

577년, 오사카에 시텐노우지[四天王寺]를 건립하기 위해서 한국의 백제로
부터 많은 화가, 장인과 불사등이 왔었다.

절이 완성되어 그들이 귀국의 도중에, 이 땅에서 폭풍우를 만나 이 부근에
피난하여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약사여래상을 조각해서 산에 안치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이 절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후에 코보대사가 당우를 지어 그
약사여래상을 본존으로 안치하였으며, 그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오곡
(쌀, 보리, 좁쌀, 수수, 콩)의 씨로 이 지역에서 농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절 이름을 다네마지[種間寺]라고 하였다.



경내에서 기념 사진 한장 찍어주고 35번 절로 부지런히 향한다.

35번절은 34번절에서 9.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길거리에 있던 토마토 무인판매소... ^^
츄상이 100엔을 넣고 토마토 한봉지를 구입한 뒤 나에게도 봉지 안에서
토마토 한개를 건내 주며 먹으며 걸으라고 한다. ^^

원시적으로 씻지 않고 먹었는데도 맛이 좋다. ^^



35번절 근처 길은 여러 갈래길이 많아서 길이 좀 헷갈린다.

거기다 35번절에서 36번절 찾는 것도 조금 헷갈리니 이정표만 의지하지
말고 주변사람들에게 길을 문의하는 것이 좋다.



11시 30분 35번절 기요타키지[淸瀧寺]에 도착하였다.

이절은 처음에 교키 승려가 이곳에 절을 세워 샤쿠혼사[釋本寺]라 하고,
약사여래상을 조각하여 본존으로 안치하였으며, 823년 이곳에서 수행한
코보대사가 절 이름을 기요다키사[淸瀧寺]로 고쳤다.

절은 그 후 크게 번성하여 칠당(七堂)을 갖추고, 열 대여섯의 말사(末寺)를
거느린 대사찰이 되었다.

경내에 큰 약사여래가 있고 태내 순회를 할 수 있다.
또 절의 왼쪽에 있는 <이라즈노야마>에 대사의 제자 신뇨가 생전에 세운 무덤이 있다.

그는 862년에 중국을 건너, 더 나아가 인도를 목표로 하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절의 이름은 코보대사가 금강 지팡이로 대지를 찔렀는데, 맑은 샘이 솟아
나오고 폭포가 된 것에 의한다.



산문에 들어서면 99계단이 있는데 힘겹게 올라가니 경내 안에서 귤을 파는
아저씨께서 웃으며 팔고 있는 귤을 오셋다이로 주신다.

거기다 츄상이 한국에서 온 친구라고 소개하니 몇개의 귤을 손에 더 얹져 주신다.

츄상이랑 걷다보니 평소보다는 정말 빠른 시간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가타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다음 절을 향해 걷다가 1시 10분쯤 동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김치를 사서 모퉁이에 앉아 츄상과 간단히 점심을 떼웠다.

츄상이 편의점에 있는 화장실에 간 사이 어떤 허름해 보이는 아저씨께서
오셔서는 나에게 말을 건낸다.

알수없는 사투리로 마구 말을 하시는데 츄상이 와서는 이 친구 일본어
모른다고 쫒아 낸다. ^^a

완전 보호자 노릇을 하는 츄상... ^^a



다시 목적지로 향해 앞장서는 츄상...
그는 다리 위를 걸을때도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



걷다가 츄상이 갑자기 서서는 전봇대를 가르킨다.

"희상... 오늘 묵을 곳 여기 써있네."

"어~ 정말이네. ^^"



2시 10분 츠카지자카 터널전에 있는 정자 앞에 츄상이 앉더니 오늘
자신은 여기까지 걷고 이곳에서 노숙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꽤 노숙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정자에 이불도 있고... 깔끔하기도 하고...
바로 앞에 자판기와 식수... 그리고 화장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있다.

36번 절까지는 5~6km는 더 가야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노숙 장소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음...

아가타상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신걸까???

예상으로는 나와 같은 숙소에 예약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궁금해서 아가타상에게 전화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

"아가타상~~!!!"

"오~ 희상... 잘 지내고 있는거지?"

"네. ^^ 지금 어디세요???"

"나는 36번절 쇼류지에 거의 다 왔어."

"아... 역시... 오늘 어디서 묵으세요???"

"국민숙사 도사에 예약을 해 놓았어."

"나도 거기 예약해 놓았는데..."

"정말??? 오... 오늘 만나겠네."

"그러게요... 그런데 여기 츄상이라는 분과 함께 있는데....
여기도 좀 좋아서 어찌할지 고민중이예요.
잠시만요. 츄상 바꿔줄께요."

"츄상... 전에 내 이야기를 했다는 분... 그분이예요.
서로 인사하세요. ^^"

츄상과 아가타상이 한참을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로 인해 알게된 인연이라 그런지 금새 친해지는 분위기다.

아...전화를 끊고 나니 더욱 고민... 아가타상을 만나고도 싶고...
이곳에서 노숙을 한번 경험해 보고도 싶고... 어쩌지???

사실 발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평소의 내 페이스가 아니라 츄상 페이스에 맞춰 걷다보니
발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 취소가 가능할까???"

"글쎄...?"

"츄상이 한번 물어봐 줘.
된다고 하면 나도 오늘은 여기에서 묵을테니깐."

츄상이 대신 전화를 해서 취소가 가능한지 물어보니 다행히도 된다고 해서
오늘은 츄상과 함께 이곳에서 노숙을 경험하기로 했다.

같이 이곳에서 자기로 결정하니 츄상도 은근 좋아하는 것 같다.

하긴 매일밤 외롭게 찬서리를 맞으며 홀로 잔다는 것이 썩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츄상이 빵과 소세지... 그리고 삼각김밥을 주며 저녁으로 먹자고 한다.

언제 산 삼각김밥이었을까???

돌처럼 딱딱히 굳은 삼각김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밥알이 입안에 맴돌아 녹차음료로 밀어 넣어 주는 센스~ ^^;;



밥을 먹고 쉬고 있는데 31번절에 가는 길목에서 만난 히로시마 부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츄상도 히로시마... 이들 부부도 히로시마...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니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

이곳에서 같이 노숙하기로 했다니 대단하다며 놀래신다. ^^



히로시마 부부가 가고 나서 또다시 요코하마에 살고 있다는 인상 좋은
아저씨께서 잠시 쉬고 가신다.

선한 눈매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분이었다.

조금 몸이 약해 보였지만.. ^^;;



5시 30분쯤... 잠자리를 준비했다.

이 시간부터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두툼한 매트까지 깔고... 혹시나 자다 떨어질지 모른다며 츄상이
가방을 밑에 받춰 놓았다.



오늘의 잠자리 준비는 끝. ^^

완전 럭셔리한 노숙이다. 헤~

조금 뒤 이곳 주민인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주변 청소를 하고 잠시 인사를
나누고 가시며 갈때 노트에 글이라도 남겨달라고 하시며 가신다. ^^



6시... 츄상은 잠자리에 들었다.

춥지 않겠냐고... 여분의 이불을 덮고 자라고 해도..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저렇게 잔다.

매일밤 저렇게 자는 모양이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좀전에 노숙을 하기 위해 도착한 청년이 텐트를 치고 있어서 그분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좀 구경해도 돼요?"

"아.. 네.. 물론이죠. ^^"

사이타마(도쿄 근교)에 살고 있다는 그의 이름은 시게상이었다.

"이름이 시게?? 한국어로 시게는 시계인데... ^^"라고 이야기 해주니
마구 웃는다.

오늘이 8일째라는 그는 30세의 청년이다.

젊은 청년이라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저 많은 짐을지고 그렇게나 빨리 걸었다니...

"근데 왜 여기다가 텐트를 쳐요.
저기 정자 가운데다가 치지..."

"화장실이 가까우면 잘때 왔다갔다 하기 편하잖아요. ^^"

말도 시원스럽게 하며 성격도 좋아보이던 시게상...
피곤 할것 같아 화장실에 들렀다 나도 잠자리에 들러 정자로 향했다.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해야지~

오늘 아가타상을 못 만난 것이 무척 아쉬운 순간이다.



아주머니께서 부탁한대로 노트에 오늘의 감사함을 짧막하게 적은 뒤...
7시... 잠자리에 들었다.

평상시보다 참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노숙센세... 츄상 덕분에 첫 노숙 경험도 하고....
여행이 더욱 풍성해 지는 느낌이다. ^^

여행이 끝나고... 오사카에서.. 츄상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희상... 나랑 처음 노숙할때... 날 처음부터 믿었어?"

"그럼...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같이 노숙을 했겠어. ^^"

내 말에 한없이 행복해 했던 츄상의 모습이 떠오른다.

낯선땅... 길 위에서...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믿음 하나로
첫 노숙의 경험을 한 날이었다. ^.~

희야가~

휘리릭~~~~


<지출 내역>

납경료 300 X 9 = 900엔 / 음료수 2개 240엔 / 삼각김밥 2개 240엔 / 우유 70엔

당일총액 : 1,450엔


일일 도보거리 : 27km
센마츠 민슈쿠 ~ 33번절 셋케이지 ~ 34번절 다네마지 ~
35번절 기요타키지 ~ 츠카지자카터널 앞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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