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너무나 심한 공상에 빠져 있었나보다. 순간 화살표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
일단은 내려가 보자 싶어... 내려왔는데... 한참을 돌고 돌아 헨로길을 찾게 되었다. --;
32번절로 향하는 이정표를 보고서야 다시 마음을 쓸어 내렸다. 흠흠... 이제 정신 차리고 걸어야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걷는데 저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어라 저 사람은...!!!
츄상이 아닌가!!! ^^
가방에 매달려 있는 보조 신발과 짝짝이 양말까지... 여전한 모습이다. ^^a
나를 다시 만난 것이 너무나 기쁜지... 시원한 음료라도 마시고 가자고 해서 조그맣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를 주문해서 마셨다.
"잘 지낸거야?"
"네."
"많이 걱정했었는데 씩씩하게 잘도 왔네. 참... 얼마전에 한 오헨로상을 만났었는데 희상에 대해 알고 있더라."
"누군데요???"
"음.. 가방에 카트를 메달고 다니시는 분이었어."
"아... 아가타상이구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아마 맞을거야."
"아... 아가타상은 어디쯤 가고 있으려나...?"
"오늘 33번절 앞 고치야 민슈쿠에서 묵을거라고 했어."
"정말요? 아... 하루 차이가 나던 거리가 어느덧 가까워졌네요. 나랑 몇km 차이가 나지 않다니 힘내서 걸어야겠어요. ^^"
"희상은 오늘 어디서 묵을 예정이야???"
"전 32번절 젠지부지 갔다가 좀더 지나서 있는 호오신테이 젠콘야도에 묵을 생각이예요. 일단 가능한지 납경소에서 물어봐야하고요. 츄상은 어디서 묵을 예정이세요???"
"난 우라도만을 건너기전 해변가 근처에서 노숙할 예정이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화장실에 갔다 와서 다시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계산대에 가서 커피 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츄상이... "아까 우리 옆에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가 오셋다이로 계산해 주셨어."
"에... 정말요? 혹시 츄상이 계산하고 그러는거 아니죠?"
"진짜야. 아주머니께 물어봐. ^^"
"그렇구나...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괜찮아. 내가 말했으니깐.. 가자."
"네."
주인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빈병에 물도 가득 채워서 다시 길을 나섰다.
츄상은 걸음걸이가 무척 빠르다.
함께 나란히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 한명이 맞추어 주지 않으면 무리다.
그래서 각자의 페이스로 32번 절을 향해 걸었다.
4시 10분이 되어서야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32번 절 젠지부지[禪師峰寺] 인왕문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 절은 처음에는 교키 승려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여 당우를 세웠으며, 807년에 코보대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십일면관음상을 조각하여 본존으로 안치하였다.
이 절은 도사만[土佐灣] 연안에 위치하며, 경내에서 바라다 보는 풍광이 아름다웠다.
경내를 둘러보고 참배를 올린 뒤 납경소로 향했다.
오늘 묵으려고 생각하고 있는 호오신테이 젠콘야도는 이곳 납경소에서 문의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납경소에서 묵서와 도장을 받은 뒤 호오신테이 젠콘야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수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오늘만 안되는 건지... 쭉 안되는 건지는 자세히는 알수 없었다.
이를 어쩌지...?
주위를 둘러보니 츄상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납경소 앞에서 지도를 보며 오늘 어디서 묵으면 좋을지 자세히 보았다.
우라도만을 건너기 전 도선 앞에 센마츠라는 민슈쿠가 있는데... 이곳이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금 막 납경소에서 나온 남자분이 나에게 말을 건내 온다.
"오늘 숙소는 정했어요?"
"이 근처에 호오신테이 젠콘야도가 있다고 해서 그곳에 묵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안한다고 하네요. 아직 예약을 못했는데... 민슈쿠 센마츠가 예약할까? 생각중이에요."
"센마츠!!! 아 거기.. 오늘 내가 예약한 곳이네요."
"에!!! 정말요?? 혹시 오늘 방이 있는지 물어봐 줄수 있나요?"
"알았어요. 잠시만요."
그가 전화를 하더니 방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스도마리로 예약 좀 부탁할께요."
"스도마리로?? 음...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그가 뭔가를 한참 생각하더니 나에게 일본 음식 중에서 못 먹는 음식이 있냐고 묻는다.
"낫토 빼고는 거의 먹을 수 있어요."
"음.. 그렇구나. 잠시만..."
그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끊고 나서 나에게 말한다.
"센마츠 민슈쿠에 예약을 했어요. 음식 포함으로 음식 값은 내가 낼거니깐 걱정하지 마요. 아주머니께서 한국인은 처음 맞아 보는 것이라 약간 긴장한 것 같아요. 음식이 입맛에 맛을지 걱정하더라고요. ^^ 지금 예약 전화를 해서 저녁 시간이 좀 늦게 준비 될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암튼 오늘 같이 갑시다. ^^"
"에... 정말요?!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될지... ㅠㅠ"
"괜찮아요. 가죠. ^^"
늘상 도움이 필요할 때면 요술방망이를 휘두른 것처럼 도움을 줄수 있는 분이 나타난다.
어쩜 내가 그곳을 예약할 줄 알고 같은 곳에 묵을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도움을 주는지... 참 신기한 노릇이다.
절 아래로 내려가니 츄상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되었어???"
"호오신테이 젠콘야도는 지금 안한데요. 이분이 센마츠 민슈쿠 예약해 주셔서 오늘 그곳에서 묵을거예요."
"오~ 잘 되었네. ^^"
"응응.. ^^"
같은 방향까지 세명이서 같이 걷다가 중간에 츄상과는 헤어져야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츄상... 저녁이 되니 바람이 엄청 부는데 괜찮을까???
혼자만 따뜻한 곳에서 자려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한국이 참 좋아. 음식도 좋고... 일때문에 한국에 수차례 가기도 했어. 부산 사람들의 무뚝뚝한 말씨도 넘 좋고... 표현은 그래도 맘은 따뜻한 사람들이더라고. 음식점에서는 인심도 많고... 매번 한국이 좋다 좋다 하니깐... 어느날은 부인이 그럼 한국가서 살라고 막 야단치는 것 있지."
"ㅎㅎㅎ 정말요? ^^ 한국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도란 도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느덧 민슈쿠 센마츠가 보였다.
32번 절에서 5km나 떨어진 곳은 이곳을 1시간 20분만에 왔다. 다들 어찌나 발이 빠르던지.. 보조를 맞추어 걷다보니 내가 걷는 걸음걸이 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음식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일단 목욕물이 준비 되어 있으니 씻고 내려 오세요. 세탁할 것 있으면 나에게 줘요. 세탁기에 내가 돌려줄테니..."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방에 들어가 밀린 빨래를 갖고 내려와 건내 주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안에 들어가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어제 씻지도 못해서 냄새나던 몸이 뽀송 뽀송해 지는 느낌이었다.
7시 10분 주인 아주머니께서 노크를 하더니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오라고 하신다.
후다닥 짐들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기자기 하게 준비된 가정식 음식을 본 순간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고치에서 유명한 타다키를 이곳에서도 먹게 되다니... 이럴줄 알았으면 점심에 다른 것을 먹을걸... ^^a
식사를 하며 오늘 이곳을 예약해 준 분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은 뭐하러... 그냥 건배나 하고 맥주나 한잔 하자고."
"에이.. 그래도 인연인데 이름 좀 알려주세요."
"본인 성은 어떻게 돼???"
"저요? 최요."
"그럼 그냥 본인은 최상 나는 건배상이라고 부르자."
"에??? 건배상이요???"
"좋잖아. 그냥 아무것도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 서로 이름을 몰라도 서로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겨 놓는 것도 좋잖아. 사실 나 한국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받았는걸... 이름도 알수 없는 사람들이 늘 한결같이 나를 도와주었어. 지금 그분들이 배푼것을 돌려주는 것 뿐인걸... 그러니 우리 서로 편하게 연락처도... 답례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지나가자고..."
건배상의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더이상 뭔가를 권하기 보다는 편안하게 받아 드리기로 했다.
나 역시 이렇게 받은 사랑을 다음에 다른 이에게 조건없이 베풀자 마음 먹으며...
"한국에는 같은 성이 많지? 내가 한국에서 일 할때 말이지 그래서 성을 부를때는... 디자이너 김상... 옆집사는 김상... 음식점하는 김상... 등등.. 이렇게 불렀다니깐.. ㅋㅋ"
"맞아요. 우리나라에 아마 김씨가 가장 많을 걸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성을 잘 안 부르고 이름을 불러요."
"그러게... 나중에 알게 되고 나서는 이름을 부르게 되었지."
"건배상은 오늘이 몇일째예요??"
"나는 오늘이 10일째야."
"에!!!! 10일째요??? 진짜 빠르시네요.
"이래봐도 내 나이가 70세나 된다고..."
"에!!!!! 정말요. 진짜 존경스러워요. ^^"
우리나라 70세 할아버지가 이길을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전혀 상상이 안간다.
나도 나름 꽤 빠른 편인데... 건배상은 정말 대단했다.
식사를 마친 건배상이 주인아주머니께 가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돈을 내더니 나에게로 와서..
"최상... 계산은 내가 다 했으니깐 더 안내도 돼."
"전부요??"
"응... 부담 갖지 말고 괜찮으니깐 푹 쉬고 건강하게 이 길을 걷길 바랄께. 참 내일 몇시에 출발할 생각이야???"
"여기 아침에 첫 배가 몇시에 있어요???"
주인 아주머니께서 6시 40분쯤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첫 배를 타고 출발할께요. 여기서 배 타는 곳까지는 몇분이나 걸릴까요??"
"한 5분정도?"
"그럼 6시쯤 식사를 하고 출발할께요."
"그렇게 해. 난 발이 좀 아파서 7시 30분쯤 출발할 생각이야."
아주머니께 각자 출발하는 시간을 알려주고 그때에 맞추어서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야말로 오늘 즐거웠는걸... 손님이 우리밖에 없으니 최상 아니였으면 혼자 밥 먹을 뻔했네. 잘 자라고.. ^^"
"네.. ^^"
식당 옆에 마사지 의자가 있었다.
사용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할수 있다고 해서 마사지까지 받고 세탁이 다 된 빨래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a
건배상 덕분에 따뜻한 음식과 따뜻한 방을 무료로 제공 받다니... 감사함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시코쿠 길을 걸으면서 분에 넘치도록 받게 된 사랑과 마음을 어찌다 돌려 줘야할지... ㅠㅠ
건배상의 가는 발걸음마다 코보대사의 은총이 함께하길 빌며 잠이 들었다.
희야가~
휘리릭~~~~
<지출 내역>
납경료 300 X 4 = 1,200엔 / 핸드폰 고리 2개 900엔 점심 650엔 / 캔커피 12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