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어찌나 한기가 느껴지던지... 정말 절에 있던 츠야도에서 이불 없이 잤더라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요란하게 울던 개구리 소리도 지금은 조용하다.
그나저나 어제 누가 내 이야기를 했나??? 왠지 귀가 가렵다. --a
근처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 한캔을 뽑아 들고 빵이랑 같이 이른 아침을 챙겨 먹었다.
남들은 일어나자 마자 입맛이 없어서 아침을 바로 못 먹던데... 어찌된 일인지 시코쿠에 오고 나서 부터 나는 입맛이 살아 아침이면 일어나자 마자 먹을 것 부터 챙겨 먹는다. ^^a
논이 보이는 출구쪽이 아니라 반대편 커튼이 쳐저 있던 곳으로 나가 보니 어라... 세면대가 있다. --;
어제는 세면대가 없는 줄 알고 세수도... 양치질도 못했었는데.. --a
가방에서 바로 세면도구를 챙겨 갖고 나와 양치질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허걱... 이건 뭐야!!!!!
공동묘지 아닌가!!!! ㅠㅠ
그래서 커텐을 쳐 놓은 것인가???
어쩐지.... 자면서 내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라니... 귀신들이 놀러 온 모양이다. --a
저녁에 알았더라면 무서워서 잠도 못잤을텐데... 아침에 이 사실을 안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a
6시 30분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늘도 빨간 화살표를 따라 길을 나선다.
이 동네는 큼직한 사람 모양의 화살표가 눈에 잘 띄게 붙어 있어서 길 찾기가 정말 수월했다.
유채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골목안 풍경... ^^
오전 8시 29번 절 고쿠분지[國分寺]에 도착했다.
이곳은 코보대사가 진언종의 절로서 복을 부르고 액을 막는 성제의 비법을 수양하고 시코쿠 영지로 정했다.
또한 호시쿠(자신의 연령에 할당되어 있는 별에게 비는 것으로 액을 막고 복을 부름을 기원하는 것)의 기본 도장으로 되어 있다.
비가 오는 경내를 투명 우산으로 꾸며 놓은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쏟아져 내릴 듯 예쁘기만 한 꽃나무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한 소녀가 나에게 와서는 납경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 보길래 알려주었는데... 어라~ 이 소녀 어제 야시 파크로 들어서기전 데이야마 터널 근처에서 본적 있는 소녀이다.
어린 나이에 씩씩하게 걷고 있는 이 소녀의 이름은 아키코상이다. 몇번의 스침을 경험하고 나서야 그녀와의 인연이 이어지니...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좀더 뒤로 미루고자 한다. ^^
납경소 옆에는 따뜻한 녹차와 물등을 먹을 수 있게 무료 자판기가 설치 되어 있었다.
따뜻한 녹차 한잔 마시고 힘내서 다시 길을 나선다.
29번 절을 나와 30번 절로 향하는 길은 논길이 펼쳐졌다. ^^
주변이 모두 논으로 되어 있는 논밭길을 이처럼 걸어 본적이 있었던가...? 어렸을때 시골집 풍경처럼 따뜻하고 평온 하기만한 길이었다.
한땀 한땀 자신의 손으로 곡식을 심고 있는 농부 아저씨의 모습.. ^^ 저렇게 정성스레 키운 곡식은 얼마나 맛이 좋을까!!!
한시간여 넘게 걸으니 예쁜 오헨로 휴게소가 눈에 보였다.
내 어깨가 아프다 소리칠지 어찌 알고 이렇게 휴게소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
오늘도 홀로 꿋꿋이 걷고 있는 거울속의 내 모습이 이쁘기만 하다. *^^*
이러다 공주병에 걸리는 것 아닌가 몰러~ 헤~
오헨로 복장이 제대로인 아주머니 한분이 와서는 옆에서 쉬다가 이내 먼저 길을 나선다.
이제 나도 슬슬 가볼까나? ^^
30번절 젠라쿠지 바로 옆에는 도사신사가 있는데 젠라쿠지보다 경내도 더 크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에 비해 작고 한산하기만 했던 30번절 젠라쿠지[善樂寺]는 우여곡절이 많은 절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에 신불분리때문에 폐사가 되어 본존을 옮긴 안라쿠지가 30번 절이 되었다.
그후 1929년에 젠라쿠지가 재건되어 30번 절이 졸지에 2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해마다 15만명 이상이 88개 절을 순례하러 시코쿠에 오는데... 납경료로 내는 300엔이며 기념품... 또 사찰의 유료 숙박 시설 슈쿠보 등등 많은 특혜를 받게 되니 서로 물러 설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두 절은 1993년까지 서로 30번째 사찰임을 주장하며 논쟁을 오고 가다가 1994년 1월 1일 협의에 의해 젠라쿠지가 30번 절이 되었다.
납경소에 들어가 묵서를 받으려고 하는데 스님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 종이 있어서 그것을 흔들어 소리를 내니 스님이 나와 묵서와 도장을 찍어 주셨다.
납경소 안을 둘러보다 예쁜 핸드폰 걸이를 발견해 두개를 기념으로 사왔다.
가방이 무겁기때문에 기념품 같은 것은 거의 살 생각을 안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예쁜 핸드폰 걸이라 결국 사고 말았다. ^^
경내를 빠져 나와 벚꽃이 양쪽으로 활짝 피어 있는 길을 걸어 나왔다.
젠라쿠지를 보니 사연 많은 안라쿠지도 들려서 보고 오려고 했는데... 지도를 보니 헨로 길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이번에는 아쉽지만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였다.
걷다보니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12시 40분이 되었다.
어제 너무 부실하게 밥을 먹어서 오늘은 제대로 먹어 주고자 마땅한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우동집... ^^
셋트 메뉴가 있어 보니A셋트는 550엔 B셋트는 650엔이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저렴하다. 거기다 고치에서 먹어 보고 싶었던 타다키까지... B셋트가 더 끌려서 주문했더니 우동은 차가운 것을 먹을 것이냐 뜨거운 것을 먹을 것이냐 묻는다.
날씨도 덥고해서 차가운 것으로 시켜 먹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집인지 가게 안에는 발디딜틈 없이 꽉 차 있었다.
그나저나 왼쪽에 이 갈색 육수 같은 것은 어떻게 먹으라고 나온 음식일까?? --a
타다키를 찍어 먹으라고 나온 건지... 국물로 마시라고 나온건지... 도통 알수가 없다. --;;
타다키의 맛은 지난번 다카하시상과 먹었을때 보다 맛이 좋았다. 다만.... 흰살 생선에 익숙한 나에게는 완전 맛있는 음식은 아니였다. ^^;;
일본은 지금 입학 시즌인가보다.
길거리에 아이들과 부모님이 왜이리 많이 지나가나 했더니 지나가다 발견한 초등학교는 입학식으로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그때 내 곁은 지나가는 노부부 한쌍이 있었다.
어찌나 나보다 더 씩씩하게 걷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b
나이가 들어서도 저리 함께 하는 모습들이 왜이리 부럽기만 할까!
특히나 다른 어떤 여행보다 이렇게 순례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부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 길을 걸으면서 젊은 커플이나 부부는 만난적이 없다.
저렇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함께한 이들이 이 길을 함께 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오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히로시마에서 왔다고 하는 이 부부와의 만남도.... 후에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산길을 올라가니 마키노 식물원도 있고 산책로도 예쁘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꽃구경을 하러 온 모습이 보였다.
1시 40분에 도착한 치쿠린지[竹林寺]는 고치시 중심가에서 약 6km 떨어진 고다이산[五台山]의 정상에 있다.
죠무[聖武] 천황이 당나라의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배알하는 꿈을 꾼 뒤, 일본에서도 그와 비슷한 지형의 영지를 찾다 도사[土佐]의 고다이산에 건립한 절이다.
에도시대에는 도사 번주인 야마우치 가문의 수호를 받았으나, 메이지의 불교배척운동으로 황폐화되었다가 1904년에 재건하였다.
17세기 이후에는 학문의 절로 도사의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된 곳이며 수험 시즌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본존인 문수보살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부처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내 입구에서 너무나 예쁜 예복을 입고 있는 예비 신랑 신부를 만났다.
경내가 무척 크고 아름다워 야외촬영을 하러도 많이 오는 모양이다. ^^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을 해 주신다.
경내에 행운을 부르는 마네키 네코가 크게 안치 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사연이 있는 고양이였다.
오랜 옛날 고치시의 아이네코가, 기타무라가에서 키우던 고양이 새끼가 성장하면서 체크무늬 모양에서 배쪽에 금색의 털에 [北]이라는 문자가 나타나 이윽고 집안에 행운이 이어져 번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에게 감사의 뜻을 올리기 위해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2층에 있는 경내를 둘러보고 아래로 다시 내려와 보니 어느새 신부가 옷을 갈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
역시 웨딩 촬영의 꽃은 신부이다보니 신랑보다는 신부가 더 많은 옷을 갈아 입나 보다. ^^
용기를 내 다가가 결혼을 축하드린다며 작은 선물 하나를 주었다. ^^
그리고 함께 기념 촬영까지.. ^^
행복해 보이는 신랑, 신부와 함께하니 그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 오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니 서울에 두고 온 그가 생각났다.
몇년전부터 양쪽 집안에서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뚱뚱해져 버린 몸매때문에.... 자꾸만 나중에 나중에를 외쳤었다.
그리고 결혼은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을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미뤄 놓았는데... 이곳에서 너무나 예쁜 신랑 신부를 보니... 이제는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밤... 그에게 보낸 엽서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 있다.
[오늘 31번 절에서 일본인이 결혼 전 웨딩 촬영하는 모습을 봤어. 정말 예쁜 신부와 성격도 외모도 좋아 보이는 신랑의 모습을 보니 부럽더라. 우리 이제 결혼하자. 누구 때문이 아닌 내 자신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많은 이들의 축복속에 결혼 하고 싶어. 돌아가는 날 당신이 기쁘게 맞아 줄수 있게 몸도 마음도 만들어서 돌아갈께. 시코쿠에서 많은 노년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보여. (젊은 부부는 못 봤음) 마지막을 함께 준비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어.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주고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부럽기도 하고...]
늘 두렵고 멀게만 느꼈던 결혼을 이렇게 용기있게 받아 드리게 된 것도 시코쿠가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
희야가~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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