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도보순례

글/그림 : 희야시스

[17일째] 사케를 먹고 나니 오늘은 따뜻한 밤이 되겠는걸~

<시코쿠 88절 1200km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다. (27)>


- 사케를 먹고 나니 오늘은 따뜻한 밤이 되겠는 걸~-


2010. 4. 10. 토요일 / 흐리다 오후에 비 (17일째)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6시에 일어나게 되었다.

6시에 츄상과 함께 출발하기로 했는데...--;;

6시 10분쯤 츄상이 방으로 찾아왔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30분에 출발하자고 한다.

얼른 씻고 어제 사 놓은 신라면까지 먹어주고 출발하는 센스.. ^^a

남들은 일어나자마자 입 안이 까칠해서 아침밥을 잘 못먹던데...
나는 왜이리도 잘 먹히는지... ㅋㅋ



6시 30분 츄상과 함께 호텔을 빠져 나왔다.

호텔 앞에 있는 귀여운 빵집의 외관.. ^^b



어제 나베야키 라멘을 먹었던 가게의 외관... ^^

아~ 또 먹고 싶다.



늘 나보다 빠른 츄상의 뒷 모습...



한참 앞질러 가던 츄상이 서서 저쪽을 가르킨다.

"왜요??"

"저기... 저곳이 히까리 민슈쿠야."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불과 20분밖에 안 떨어진 곳인데...
어제는 폭우땜에 이곳까지 못오고 호텔에 예약을 했다.

아가타상 어제 저곳에 묵었는데..
출발 하셨을까???

창문에 불빛을 보고... '혹시 저곳이 아가타상의 방은 아니겠지?'
하며 혼자만의 상상을 해 본다. ^^a

몇일 동안 간발의 차이로 계속 아가타상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인연이 있으면 만날 것을 알기에 다시 힘내서 출발한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는 츄상의 모습...
어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좀처럼 발걸음에 힘이 없는 나... ㅠㅠ



어째튼 각자의 페이스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걸으며 풍경들을 맘껏 즐기는 희야.. ^^



작은 초등학교의 한가로운 모습~
토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난 산길...
어제 내린 비로 주변에 물줄기가 무척이나 거세 보인다.

거기다 나뭇잎에 물기가 가득해서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발바닥에는 산길이 최고.. ^^b



길을 걷다 낙옆들 사이로 나보다 더 조심 조심 걷고 있는 작은 게를 발견했다.

느리게 걸으니 자칫 잘못해서 밟을 수도 있는 생물 하나 하나에도 눈이
들어와 피해서 걸을 수 있었다.

왠지 녀석을 구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괜시리 기분이 업된다. ㅋㅋ



산길에서 내려와 마을 길이 나타나니 오헨로상들을 위한 휴게소가 나왔다.

힘들때 먹을라고 놓여져 있는 과일이며 책들...
거기다 자판기까지 정겨움이 넘친다.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방을 내려 놓고 음료수 한잔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겨 본다.



다시 마을 길을 걷는데 어느 집 대문 앞에 너무도 귀엽고 예쁜 화분들을
보니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캐릭터 화분의 머리위에 난 꽃들...
캬~~~ 넘 귀엽다. ^__________^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식으로 생긴 화분이 있나???
있다면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너무 귀엽다.

녀석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희야...
저곳에 앉아 한참을 녀석들과 수다 떨다 일어 났다. ^^a



하천 사이로 활짝 피어 있는 벚꽃들....
거센 폭우에도 여전히 살아 남아 나에게 솟짓하고 있다.



또 다른 오헨로 휴게소...
좀전에 쉰 관계로... 이곳은 패스~



오늘은 유난히도 오헨로 휴게소가 많다. ^^

저 멀리 산에 오르기전 쉬었다 가라고 만든 얼마 되지 않은 듯한
휴게소가 보였다.

나의 앞에 걷던 오헨로상이 쉬다가 먼저 출발하고....
나도 잠시 그곳에서 쉬다 바로 출발한다.



산길을 조금 오르자마자 길게 놓여져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오른막 길만 나오면 저질 체력으로 변신...
중간에 휴게소가 보이지만...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ㅠㅠ



12시 20분... 산길 속에서 발견한 오헨로 표지판

37번 절까지 16km나 남았다고 한다.
5시까지 도착하기에는 간당 간당한 거리이다.

그래도 가야한다.
왜냐면 이곳에서 37번 절 가기 전까지는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37번절 근처에는 5개의 숙박 업소가 있어서 아직 예약은 하지 않은 상태이다.



산길을 내려와 평지길이 나왔는데 저 멀리 논일을 하고 계시는 아저씨께서
마구 손을 흔들어 주신다.

"어디서 왔어?"

"한국이요."

"정말.!!! 힘내라고... 이제 절까지는 12km밖에 안 남았어."

"에~ 정말요? 감사합니다."

얼마 안 걸은 것 같은데 12km 남았다는 말씀에 완전 기분 좋아서 다시 걷는다.



그런데 도로로 이어지는 초입 부분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37번 절까지는 13.3km 남았다고 써 있다.

흑.... 아저씨께서 내가 너무 많이 남았다고 하면 힘들어 할까봐 조금
줄여서 말씀하셨나 보다.

산에서 등산객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거짓말 중 하나가...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다 왔어요."라고 답해주는 거짓말이 있는데....
그것과 똑 같은 의미로 하는 좋은 거짓말을 해 주셨나 보다.



56번 도로에서 발견한 휴게소...
간판 아래 귀여운 인형이 매달려 있다. ^^



오늘은 라면 한끼 먹고 계속 걷고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이곳에 들렸는데 영업을 안하는지 문이 다 닫혀 있다.



소들 사이에 늠늠하게 버티고 있는 말 한마리... ^^



4시에 아구리 구보카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걷는데 저 만치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누군가 했더니 진작부터 도착한 츄상이다.

츄상은 오늘 이곳에서 노숙을 할거라고 한다.

비를 피할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나름 괜찮아 보이는 곳인 것 같았다.

37번절이 1시간 안쪽의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숙소 예약도 안했고 오늘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 것 같아서
이곳에서 나도 함께 노숙을 하기로 했다.



은근 내 결정에 츄상도 기뻐 하는 것 같다. ^^a

지도를 보니 내일이면 토사 토지안에 도착 할수 있을 것 같아 니나가와상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쿄토에 계실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토사 토지안에 계신다면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니나가와상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자 다행히도 바로 받으신다.

지금 쿄토에 계신지? 고치에 계신지? 물어보니 토사 토지안에 계신다고 한다.

나의 위치를 알려드리고 내일쯤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도
괜찮은지 물어보니 좋다고 허락을 하신다. ^__________________^

내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일 아는 분이 운영하는 젠콘야도에서 묵기로 했는데 츄상도 괜찮으면
그곳에 묵는 것 어때?
2,000엔에서 500엔 사이로 돈을 받고 아침과 저녁도 주는 곳이야.
멋지지?"

"그래? 나도 그곳이 좋겠네."

다시 아가타상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오늘 길에서 혹시 만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은 만나지 못한 아가타상...
오늘은 어디서 묵으실까???

"아가타상... 저예요.
오늘은 어디서 묵으세요?"

"나는 오늘 37번절 이와모토지에서 슈쿠보(절에서의 숙박형태)에 묵기로 했어.

"아~ 그렇구나...
전 지금 아구리 구보카와에 있어요.
이곳에서 오늘 노숙할거예요.
내일 일찍 출발하게 되면 절에서 만날 수 있겠네요."

"그러게.. ^^ 조심하고... 내일 보자. ^^"

"네.. ^^"



츄상이 사케 한병을 건내 주었다.

"자 한잔 하자고..."

"네. ^^"



안주로 그곳에서 팔고 있는 꼬치를 사왔다.

빈 위장에 사케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한병을 뚝딱 비운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음... 사케를 먹고 나니 오늘은 따뜻한 밤이 되겠는걸~"
했더니 츄상이 마구 웃는다.

나의 그 모습이 완전 재미났던 모양이다.

노숙자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이제야 알겠다.

추운밤을 이겨내기 위해 술만큼 좋은 것도 없을 듯....
빈속이라 그런지 금새 얼굴이 뜨거워진다.



"오늘 점심은 뭐 좀 먹었어???"

"아니요~"

"자~ 지금 저녁 먹자."



츄상이 건내준 도시락을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

그나저나 빈속에 술을 마셨더니 졸음이 몰려온다.

휴게소가 문 닫는 시간이 9시라서 그때나 되어야 잠자리를 준비하고
누울수 있는데 왜이리 눈꺼플이 무거운지...!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츄상이 나에게...

"희상 먼저 자."

"그렇지만 9시가 되어야 잘 수 있지 않나?"

"괜찮아. 내가 지켜봐 줄께."

"진짜?"

"응. ^^"



의자를 붙여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밑에 매트는 츄상이 쓰는 건데 나보고 깔고 자란다.

이곳은 지난번 처럼 이불이 있지는 않다.
사실 정자나 휴게소에 이불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바지도 두개나 입고 옷도 여러겹 입고 잠바를 입고 우비를 덮고 자야하는
신세이다. ^^a

완전 불쌍해 보이는 나의 모습...--;;
그러나 그 괴로움 마져도 즐기는 모습이다. ^^a

우비를 덮고 자려고 하는데 츄상이 자신의 침낭과 바꾸자고 한다.

폐끼치기 싫어 거절하는데 죽어도 안된다고 그럼 여기서 잘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는 츄상 때문에 결국 츄상의 얇은 침낭은 내가 나의 우비는 츄상이 덮고
자기로 했다.

사실 츄상은 여러겹의 따뜻한 옷이 많지만 나는 얇은 옷 몇개가 전부인 것을
츄상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암튼 흑기사 츄상 덕분에 침낭속에 잠을 잘수 있게 되었다.

술 기운 때문인지... 스르륵 눈이 감기고....
그런 내곁에서 츄상이 9시까지 지켜보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자 그도 잠자리에 들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새벽에는 비도 많이 내리고 어찌나 춥던지....
밤새 덜덜 떨며 잠이 들었다.

그나마 우비 입고 잤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ㅠㅠ

오늘밤도... 침낭 속 감긴 눈동자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 내린다.

희야가~

휘리릭~~~~


<지출 내역>

꼬치구이 2개 600엔 / 커피 120엔

당일총액 : 720엔


일일 도보거리 : 27km
사츠키 비지니스 호텔 ~ 아구리 구보카와 휴게소




무단 도용 및 링크, 리터칭을 통한 재배포 등은 절대 금합니다.
(http://heeyasis.com 희야의 비밀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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