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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 irish15

#138.(일상) 백일장에 대한 기억..

 
 
 
 
 
고교 시절..
 
 
 
온갖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던 그해 오월.
 
교내 백일장이 열렸습니다.
 
 
 
2시간 정도의 주어진 시간동안 학생들은 학교 밖 근처
 
야트막한 동산 주위로 여기저기 흩어져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주제는 교육적(!)이고도 진부한 '오월'과 '스승의 은혜'로 기억합니다.
 
나는 '오월'을 선택, 산문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창 감수성 풍부했던 시절, 눈부시도록 화창한 봄날의 그 어느때 오후,
 
따사로운 햇볕속으로 어린 나의 서정은 침잠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반 급우인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군요.
 
 
 
자신은 작문 하고는 영 관계가 부실(?) 하니
 
대신 좀 써달라나요.
 
 
 
갑작스런 부탁에 잠시 당황해 하다 이내 거절해 보지만,
 
녀석은 그냥 지면만 채워달라며 막무가내로 졸라
 
어쩔수 없이 떠안고 말았습니다.
 
 
 
'스승의 은혜'로 제목을 정하고 재빨리 쓸수있는
 
시를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거침없이 써내려갔습니다.
 
 
 
지금은 그 첫 구절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 입니다.
 
 
 
'아프도록 맞았지만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로 향하는 관심의 한 표현임을 알기에..'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문장이지만
 
그때 당시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던 것이
 
아마도 국어 선생님의 마음에 들었던가 봅니다.
 
 
 
다 쓴 시를 녀석에게 건네주고는 이내 나의 산문을
 
정성껏 써내려 갔고, 시간에 맞추어 제출할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교내 체육 대회가 열렸고
 
대회가 끝난 후 각종 시상이 이어졌습니다.
 
 
 
아!.. 이런...
 
 
 
내가 써 주었던 그 시가 '장원'이 된것입니다.
 
 
 
호명을 받고 서둘러 시상대로 향하던
 
그 친구의 눈길이 잠시 나에게 머물더군요.
 
 
 
그것은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습니다.
 
 
 
애써 웃음 지으며 축하를 건넸지만
 
억울함과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저 시상대에 올라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난데..'
 
 
 
녀석은 미안한지 어쩔줄 몰라하며 자꾸 나에게
 
부상으로 받은 탁상시계를 내밀었지만
 
'그것은 너의 행운이야!' 라며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산문 또한 '가작'으로 선정되어
 
나의 작문이 모두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썩 괜찮은 기억중의 하나로
 
나의 뇌리 어느 한곳에 가지런히 걸려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 친구의 기억 속 어딘가에도 남겨져
 
어느날 문득 떠오른다면, 가벼운 미소라도 지을수 있는
 
작은 추억이 될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그해 오월,
 
 
 
봄꽃이 온통 만발했던 그 때 그곳에는
 
감수성 풍부한 한 고교생이
 
푸른하늘을 두눈속에 가득 담은 채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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