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티배깅

구름24 2026/11/04
추천 0 비추 0 조회수 3994
서양의 역사나 일화를 보면 교수형을 집행하던 도중 밧줄이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려 형 집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정말 아주 가끔 있었다.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워낙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내리신 운명이라고 해서 사면을 해주는 것이 관례였고,
이런 준 임사체험 속에서 살아난 놈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함, 혹은 황제나 왕의 자비를 설파하기 바빴으니, 나라 입장에서도 아주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애초에 진짜 죽이고 싶었던 놈들은 실패해도 결과적으로 살아날 수 없는 방법을 쓰거나, 죽을 때 까지 반복해서 저승으로 보냈긴 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의 승하 이후 니콜라이 1세가 왕위를 이어받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일으켰다
거두절미하고 결과적으로 짜르를 제끼겠다는 건데, 그게 쉽게 되겠는가?
당연히 가볍게 진압되고 주모자 5명은 어떤 방식으로 처형당할 것인지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최초의 안은 어쨌든 반란이기 때문에 영국의 사례처럼 교수척장분지형, 대충 거열형 비슷한 걸로 죽이자는 것이었는데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통해 대충 아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놀랍게도 이 형으로 1803년 집행 기록이 있다.
짜르인 니콜라이 1세가 '야, 그래도 우리 문명국인데 이건 좀 아니지 않냐?' 해서 적당히 조정한 결과물이 교수형이었다.
니콜라이 1세 입장에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지만 그래도 제법 신경을 써서 깔끔하게 죽게 배려해준 것이다.
교수형 집행 당일, 콘드라티 릴레예프를 비롯한 주모자 5명이 교수대에 올라가게 되는데, 이 중 3명은 밧줄이 끊어져(풀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수형 집행에 실패하게 된다.
기록에 남을 정도로 드문 일이 5명 중 3명에게 일어난 전말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마지막 교수형 집행이 50년 전이라서 밧줄이 낡았거나 미숙한 집행인이 매듭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살아남았음에 안도하며 안 믿던 신을 찬양하거나, 짜르의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천운으로 살아남은 릴레예프는 간땡이가 부었는지 군중들 앞에서 전설로 남은 티배깅을 갈겼다.
"러시아! 너는 사람을 어떻게 매달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불행한 나라로구나!"
말은 러시아지만, 결과적으로 니콜라이1세가 교수형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이라고 깐 거다.
"와.. 이 새끼들, 운 한번 억세게 좋네;
싫지만 관례니까 사면장은 써준다.
(사면장을 적으며) 아, 그런데 얘네 살아남고 뭐라고 말하던가요? 하나님을 칭송하던가요? 아니면 저를 칭송하던가요?"
"... 러시아는 사람을 어떻게 매달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불행한 나라라고 하던데요?"
격분한 니콜라이 1세는 작성하던 사면장을 찢어버리고 새로운 밧줄을 주문했다.
새 밧줄은 끊어지지도, 풀리지도 않았다.
릴레예프의 티배깅은 온 유럽에 퍼졌고, 주둥이 조심해야 한다는 반면교사로 한동안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릴레예프의 고향인 바토보에서는 '목매달린 사람' 하면 릴레예프를 말하는 것이라는 썰이 있다.
AI 요약
서양의 역사나 일화를 보면 교수형을 집행하던 도중 밧줄이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려 형 집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정말 아주 가끔 있었다.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워낙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내리신 운명이라고 해서 사면을 해주는 것이 관례였고, 이런 준 임사체험 속에서 살아난 놈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함, 혹은 황제나 왕의 자비를 설파하기 바빴으니, 나라 입장에서도 아주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페이지
  • 0
  • 0
댓글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