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순공주는 왜 공주가 돼 청으로 떠났나

콩이7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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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는 병자호란 뒤 청의 혼인 요구에 대응해 1650년 효종의 양녀로 책봉돼 섭정왕 도르곤과 혼인한 인물이다.

본명은 이애숙으로, 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공주였던 것은 아니며, 조선 조정은 청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그녀에게 공주 작호를 내렸다.

청의 혼인 요구는 병자호란 항복 조건에서 비롯됐다.

청은 1637년 처음 혼인 상대를 요구했고, 아내를 잃은 도르곤이 1650년 다시 요구했다.

효종에게는 어린 친딸이 있었지만 보낼 수 없었고, 대신들도 딸을 내놓지 않았다.

청 칙사가 후보 가운데 이애숙을 선택하자 효종은 3월 25일 그를 양녀로 삼아 의순공주로 책봉했다.

공주는 4월 22일 시녀 16명, 호행사 원두표 일행과 함께 청으로 떠났다.

의순공주는 5월 21일 산해관 부근 연산에서 도르곤과 혼인했다. 당시 공주는 16세, 도르곤은 39세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기록은 엇갈린다.

한 기록은 공주가 소박을 맞았다고 전하지만, 다른 기록에는 도르곤이 공주를 흰 매에 빗대 ‘백송골’이라 부르며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도르곤은 혼인 7개월 만인 그해 12월 사냥 중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이후 의순공주가 보로에게 보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재가 상대에 관한 서술은 일치하지 않는다.

의순공주는 1656년 4월 26일 청 순치제의 허락을 받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을 요청한 아버지 이개윤은 조정의 허락 없이 일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관작을 빼앗기고 도성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뒤 다시 관직에 올랐다.

효종은 공주에게 매달 쌀을 지급하도록 했다. 의순공주는 1662년 8월 6일 의정부 금오리에서 2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순공주의 묘는 의정부 천보산 기슭에 있으며 ‘족두리묘’라고도 불린다.

청으로 가던 중 강물에 몸을 던져 족두리만 건졌다는 이야기에 붙은 이름이지만, 실제로 공주는 청에서 6년을 지내고 돌아왔으므로 이 이야기는 기록과 맞지 않는 야사다.

정주당과 의정부 정주당놀이에는 공주의 명복을 빌고 넋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고 자료

AI 요약
의순공주는 병자호란 뒤 청의 혼인 요구로 1650년 효종의 양녀가 되어 도르곤과 혼인했다. 도르곤 사후 청에 머물다 1656년 귀국했으며, 1662년 의정부에서 28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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