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일곤 감독의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는 김혜자가 한 차례 출연을 고사했던 작품이다. 85세의 김혜자는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촬영 뒤에는 ‘들풀’처럼 지내고 싶다며 출연을 사양했지만, 감독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순옥은 울지 않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여전히 찬란하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믿는 사람입니다.” 영화는 10월 21일 개봉했다.
이혜숙 작가가 중학생 딸에게 역사를 알려주려고 쓴 희곡이 출발점이다. 일제강점기 산골 마을의 두 소녀가 한 소년을 만나 척박한 현실에서도 꿈을 키우는 이야기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집을 다룬다. 고통에만 머물기보다 살아 숨 쉬며 아름다운 삶을 꿈꿨던 이들의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어머니가 딸에게 건넨 이야기가 김혜자의 연기를 거쳐 관객에게 닿는다.
김혜자는 기억을 잃은 친구 정임을 돌보는 노인 순옥을 연기했다. 그는 “우리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 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잊지 않고 마음에 품으면 “아주 오래전 작은 일도 다시 우리를 비춰줄 수 있다”고도 했다.
어린 순옥 역의 박서경, 어린 정임 역의 최주은, 두영 역의 문성현이 출연했고, 차미경·조성하·이세영이 여러 세대를 잇는다. 송 감독은 작품의 진정성을 위해 연기력을 캐스팅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영화 끝에서 순옥은 “내가 가면 내 친구를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라고 말하고, 손녀는 “내가 기억할게”라고 답한다. 김혜자가 연기하는 순옥은 한국전쟁 세대를, 이세영이 맡은 손녀는 IMF 외환위기 세대를 잇는다.
이 장면은 2026년 3월 기준 정부 등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가 5명이고 235명이 사망했다는 통계와 맞닿는다. 당시 생존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95.8세였다.
원문은 한국인 평균 수명 85세를 기준으로 평생 약 75만 시간을 산다고 설명한다. 영화의 두 시간은 그 가운데 0.01%에도 못 미친다. 짧은 관람 시간으로 과거를 직접 겪은 이들의 삶과 기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작품이 전하는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