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술을 마시더라도 혼자이고 싶지 않은 청년들이 있다. 인구 12만 명의 충북 제천, 구도심 청전동의 칵테일바 웨스턴 빌리지는 이들에게 술을 마시는 곳을 넘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된다.
최근 유행하는 혼술바처럼 ㄷ자 테이블로 손님 간 대화를 유도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서로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말을 섞는다.
지난 14일 저녁 처음 가게를 찾은 강준호(34·가명)는 초등학교 조리직 공무원이다. 2년 전 나고 자란 제천으로 돌아왔지만, 친한 친구들은 모두 제천을 떠났다. 준호 자신도 대학은 청주로 갔다. 가족이 있는 고향인데도 이대로는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두 개의 동아리와 청년센터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목마름을 느낀다. 결혼을 생각해도 소개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영영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다.
지역에서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적다는 점은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의 응답에서도 나타났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서울 청년이 71%, 지방 중소도시 청년이 47%였다. 경남 출신 김예은(26·가명)은 지역의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부족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다고 말했다.
관계의 어려움에는 코로나 시기의 경험도 겹친다.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 동안 대학 신입생이었던 이채원(24·가명)은 교류 행사가 잇따라 취소돼 사람을 사귈 기회를 놓쳤다.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가운데 73명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중 35명은 관계·교류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후 11시쯤 가게에 들어온 김성민(24·가명)은 원주에서 제천으로 와 정육식당 일을 배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밤 10시까지 일해 사람을 만날 시간과 공간이 부족하다. 타지에서 와 공단 등에 취직한 청년들도 이곳을 찾는다. 제천에는 새벽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 손에 꼽힐 정도다.
사장 박태준(33·가명)은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저녁 10~11시 사이에 가장 많다고 했다.
1999년 제천에 자리 잡은 웨스턴 빌리지는 박태준이 지난해 말 인수하기 전 폐업의 갈림길에 있었다. 박태준도 한때 이곳에서 혼술하던 손님이었다. 그는 “이것마저 없어지면 제천이 시가 아니라 ‘군’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 바에서는 공무원과 정육식당 직원, 대학원생이 결혼·취업·매출 걱정을 나눴다.
처음 만난 준호와 대학원생 윤수연(26·가명)은 제천에서 아는 사람이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단골 성민은 박태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카운터를 지켰다. 자정 무렵 자리를 뜨며 준호는 “저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자리 참 귀하네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