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유적의 실재를 뒷받침한 발견, 전쟁 흔적은 어느 층에 있을까

아직졸려20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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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는 한때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 도시로 여겨졌다.

고대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기원전 1200년경에서 3000년 넘게 지난 데다 신화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독일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은 ‘일리아스’에 나온 두 강과 언덕 위 성채, 바다와 평야의 묘사가 실제 지형과 맞을 것이라 보고 유적을 찾아 나섰다.

영국인 프랭크 칼버트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1870년 시굴한 뒤 이듬해 본격 발굴을 시작했다.

고대 도시의 흔적이 드러났지만, 슐리만은 전문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언덕을 위에서 아래로 깊게 파며 중요한 문화층을 훼손했고, 금 장신구와 청동 그릇 등을 발견해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이 유물은 트로이전쟁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기원전 2500년경의 것으로 밝혀졌다.

슐리만은 유물 일부를 해외로 무단 반출하기도 했다.

히사를리크에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로마·비잔틴 시대까지 사람들이 살며 쌓은 유적층이 10개 겹쳐 있다.

슐리만은 아래쪽 트로이 2기에서 발견한 불탄 흔적을 전쟁의 증거로 오인했고, 그 위에 있던 전쟁 시기의 층을 훼손했다.

이후 연구를 거쳐 오늘날에는 기원전 1180년경 불타 무너진 트로이 7기 전반기를 전쟁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유적 입구의 안내문에는 히타이트 문헌의 ‘윌루사’와 ‘일리오스’가 함께 적혀 있다.

많은 학자는 윌루사를 호메로스의 일리오스와 같은 곳으로 보며, 일리오스는 트로이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트로이는 에게해와 다르다넬스해협을 통해 흑해와 지중해로 이어지고 육로로는 소아시아와 연결되는 교통 요충지이기도 했다.

발굴된 성벽은 도시의 흔적을 보여주며, 불탄 흙층과 식량 저장용 항아리 무더기는 과거의 사건을 살피는 단서다.

이 흔적은 트로이 6기의 지진 또는 7기 전반기의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따라서 유적이 확인됐다고 해서 서사시의 전쟁 장면이 모두 그대로 역사였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한 목마 이야기도 군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전쟁의 결말을 극적으로 만든 문학적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AI 요약
트로이는 한때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 도시로 여겨졌다. 고대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기원전 1200년경에서 3000년 넘게 지난 데다 신화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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