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책의 재료였던 양피지를 살짝 문질러 얻은 가루에서 고대 양두 바이러스의 DNA가 나왔다.
더 오래된 흔적은 청동기시대 양의 이빨에서 확인돼, 이 가축 질병이 적어도 3700년 전부터 유라시아에 퍼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케빈 데일리 아일랜드 더블린대 식품과학대 연구팀은 유라시아에서 모은 양피지와 가축 유해 등 시료 754개를 분석했다.
양피지는 양·소·염소 가죽을 가공해 만든 만큼 동물의 DNA뿐 아니라 당시 병원체의 흔적도 보존할 수 있다.
연구팀은 양피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표면을 지우개로 가볍게 문질렀고, 가루에서 DNA를 추출했다.
그 결과 41개 시료에서 고대 양두 바이러스 흔적을 찾았다.
양두 바이러스는 주로 양을 감염시켜 고기와 우유 생산량을 떨어뜨리며, 심하면 양을 죽게 한다.
바이러스 흔적은 소나 염소 가죽 양피지에서도 검출됐다.
연구팀은 다른 동물로 감염이 옮겨갔거나 양피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묻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양피지만으로 어느 경로였는지는 가려내기 어렵다.
가장 오래된 직접 증거는 기원전 1700년 중앙아시아 유적에서 나온 양의 이빨에서 확인됐다.
별도로 고대·현대 바이러스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양두 바이러스는 카프리폭스바이러스 계통에서 약 5200년 전 갈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시기가 양이 유라시아 초원에서 유럽으로 대규모 이동한 약 5000년 전과 겹친다는 점을 들어, 양의 이동과 가축화가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대 기록에도 양두와 비슷한 질병이 언급됐지만, 기록만으로는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가축 사이에 퍼졌는지 밝히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양피지와 동물 유해의 유전체 흔적을 분석해 그 시기를 추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데일리 교수는 도서관과 기록보관소의 문서가 과거 감염병을 연구하는 새로운 자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9월 2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