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력이 자금난을 덜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제안한 전기요금 선납 구상이 무산됐다. 두 회사는 재무 부담과 주주 반발 우려를 들어 난색을 보였다. 한전은 삼성전자에 약 20조 원, SK하이닉스에 약 5조 원을 각각 5년 치 요금으로 미리 납부하는 방안을 타진했다.
한전에는 2028년 사채 발행 한도 축소라는 부담도 다가온다. 한도의 최대 5배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한 법적 특례가 2027년 말 만료되면,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로 돌아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7년 말 이 합계액을 28조4,177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를 적용한 2028년 법정 한도는 56조8,354억 원이지만, 같은 시점 발행 잔액은 76조489억 원으로 전망된다. 잔액이 한도를 19조2,135억 원 웃도는 셈이다.
영업 실적 전망도 자금 사정을 압박한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 연료비가 다시 급등한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2026년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52.29% 줄어든 2조6,966억 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4분기에는 당기순손실 4,930억 원을 예상해 적자 전환 전망도 나왔다.
반면 전력망 투자는 미루기 어렵다. 한전의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필요한 투자금은 72조8,000억 원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전력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투자 재원 마련에 차질이 생기면 산업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10월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력망 투자가 계속 늘고 있다며 정부와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요금 인상과 함께 한전채 발행 한도 정상화를 유예하는 법 개정도 대안으로 꼽는다.
신한투자증권은 19조 원 규모의 상환이나 자본 확충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한도 유예를 위한 법 개정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