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요청한 5년치 전기요금 선납 계획은 두 기업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한전은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사용할 전기요금 약 25조원을 앞당겨 받아 전력망 건설 등에 필요한 투자 재원으로 삼으려 했다.
요청 배경에는 사채 발행 한도 축소와 누적된 자금 부담이 있다. 정부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한전의 적자에 대응해 2022년 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의 2배에서 최대 5배로 늘렸다. 이 특례는 2027년 말 종료돼 2028년부터 한도는 다시 2배로 적용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한전의 중장기 재무계획을 분석한 결과, 2027년 말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은 28조4177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른 법정 발행 한도는 56조8354억원이지만 사채 발행 잔액은 76조489억원으로 예상돼 19조2135억원을 웃돈다. 올해 상반기 잔액도 71조5000억원에 달했다.
선납금으로 마련하려던 전력망 투자 규모도 크다. 한전의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는 2038년까지 72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2년 전 계획보다 16조3000억원 늘어난 액수다.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전선로와 변전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한전의 실적 전망도 재무 부담을 보여준다. 증권사 전망 집계에서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52.2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고, 4분기 영업이익은 823억원, 당기순손실은 4930억원으로 추정됐다. 비수도권 일부 산업용 요금을 낮출 수 있는 지역별 차등요금제도 전력 판매 수입을 줄일 변수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10월 19일 국정감사에서 전력망 투자 증가에 대응해 정부와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구체적인 인상 방안을 정부와 협의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