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길원(69) 목사가 지난 9월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센터에서 치른 아버지 장례에는 근조 화환과 부의함, 부고장, 꽃 제단, 육개장이 없었다. 그는 익숙한 의례를 따르는 대신 고인의 생애를 조문객과 나누는 빈소를 마련했다.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수의 대신 흰 셔츠와 청바지를 입혀 드렸고, 가족들도 마지막 날 같은 차림을 했다. 빈소에는 낡은 구두와 탁상시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와 생애를 담은 사진을 전시했다. 6남매는 각자의 기억을 보태 조문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듯 고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커피와 마카롱을 내고, 식사는 조문객이 인근 식당 세 곳 중 골라 먹도록 쿠폰을 준비했다.
장례는 4일장이었다. 송 목사는 마지막 날을 빼고는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를 맸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의 분홍 셔츠를 떠올려 고른 색이었다. 빈소 시계는 아버지의 심장이 멈춘 새벽 5시 5분에 맞춰 멈춰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아버지를 돌본 요양보호사가 조사(弔詞)를 했다.
그가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였던 고인은 동요 ‘반달’을 가르쳐 줬고, 유족들은 장례 마지막 날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송 목사는 꼭 알려야 할 사람들에게는 부고장을 보내는 대신 전화로 직접 장례 소식을 전했다. 계좌번호가 적힌 부고장 때문에 상대가 조문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부의함을 두지 않은 것도 부의금으로 관계를 평가하거나 조문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만 들어온 부의금은 감사히 받았고, 어머니께 필요한 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버지 이름으로 기독교 문화 체험관을 세우는 데 기부했다. 그는 이를 누구에게나 따라야 할 방식이 아니라 허례허식의 틀을 깨보려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장례식장 밖에서 작은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던 데에는 시신 저온 냉장 장치인 레스텔이 있었다. 송 목사는 공공기관이 이런 장치를 갖춰 빌려주면 교회·성당·절·마을회관 등에서도 유족이 주도하는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송 목사는 1990년대 후반 화장 장려 운동을 시작으로 평상복 수의와 한지 유골함, 종이 관 사용 등 장례 문화 개선에 나섰다. 지금까지 도운 장례는 70~80건이며, 10월 2일 제30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이런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