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책을 만드는 데 쓰인 양피지에서 가축 전염병인 양두 바이러스의 고대 DNA가 확인됐다.
케빈 데일리 아일랜드 더블린대 식품과학대 연구팀은 양피지와 청동기시대 양의 치아를 분석해 양두 바이러스가 유라시아에 적어도 3700년 전부터 퍼져 있었다는 증거를 찾았다.
연구 결과는 9월 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
양두는 주로 양을 감염시키며 고기와 우유 생산량을 떨어뜨리고, 심하면 양을 죽게 한다.
고대 기록에도 비슷한 질병이 등장하지만, 기록만으로는 양두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가축 사이에 유행했는지 특정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채취한 양피지와 가축 유해 등 754개 시료를 분석했다.
양피지는 양·소·염소 등의 가죽을 종이처럼 가공한 재료다.
동물의 DNA뿐 아니라 당시 병원체의 흔적도 보존할 수 있어 연구에 활용됐다.
양피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표면을 지우개로 가볍게 문질러 나온 가루에서 DNA를 추출했고, 전체 시료 가운데 41개에서 고대 양두 바이러스 흔적을 확인했다.
일부는 소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에서 나왔다.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 종에도 감염됐거나 양피지 제작 과정에서 옮겨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양피지 분석과 별도로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양의 치아도 조사했다.
가장 오래된 바이러스 흔적은 기원전 1700년 중앙아시아에서 나온 양의 이빨에서 확인됐다.
따라서 3700년 전이라는 연대는 지우개 가루가 아니라 양 치아 시료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와 현대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양두 바이러스는 카프리폭스바이러스 계통에서 약 5200년 전 갈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시기는 양이 유라시아 초원에서 유럽으로 대규모 이동한 약 5000년 전과 겹친다.
연구팀은 양의 이동과 가축화가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데일리 교수는 도서관과 기록보관소의 문서가 과거 감염병을 추적하는 새로운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