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무덤을 지키는 흙 군대, 병마용을 성인 남성만 만든 것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됐다.
병사 인형에 남은 지문의 융선 간격을 통계 모델로 분석한 연구에서 여성과 15세 미만 아이가 지문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됐다.
중국 산둥대와 시안 진시황제릉박물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문화유산 저널’에 발표한 결과다.
병마용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기원전 221~207년)의 유물로, 기원전 210년 숨진 진시황과 함께 묻혔다.
시안에서 북동쪽으로 35㎞ 떨어진 곳의 지하 약 5m에 자리한다.
대규모 국가 공사에는 성인 남성만 동원됐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팀은 흙을 쥐고 표면을 다듬거나 팔과 머리 같은 부위를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인형에 남은 지문을 살폈다.
분석 대상은 1호갱 한 구역의 인형 227점에서 골라낸 선명한 지문 79개다. 같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은 제외했다.
손가락 융선 사이 간격은 아이가 성장하며 넓어지고, 성인 남성이 성인 여성보다 대체로 넓다는 점을 이용해 지문을 남긴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 구성을 추정했다.
분석 결과 지문의 약 45%는 성인 남성, 약 33%는 성인 여성, 약 22%는 15세 미만 아이의 것으로 분류됐다.
진·한 시대에는 15세부터 형사 책임과 노역, 병역을 지웠다.
진나라의 다른 기록도 다양한 노동력이 동원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법률 문서에는 죄를 지은 여성이 남성과 함께 흙을 나르는 노역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국가 공방에서 만든 칠기에는 성인 여성과 소녀·소년 장인의 이름이 새겨졌고, 죽간에는 어린 노비의 노동을 생산량으로 계산하거나 공방에서 도제를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지문 비율을 실제 작업자 수의 비율로 볼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여러 지문을 남길 수도, 하나도 남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숙련된 장인이 도구로 표면을 다듬어 자국을 지웠다면 보조 일꾼이나 견습생의 지문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착됐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 결과는 작업자의 정확한 인원 구성을 제시하기보다 병마용 제작을 성인 남성의 노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