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가 ‘한국이 사랑한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 이유

꾸미는재미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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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대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공연 전날 인터뷰에서 그는 해외 활동의 출발점과 어려움, 후배 음악가를 돕고 싶은 뜻을 이야기했다. 리허설 중 다음 날 공연에서 장구를 치겠다고 제안했지만, 실제 연주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수미는 1983년 3월 28일 가방 두 개를 들고 로마에 도착했고, 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영양실조로 길거리에서 쓰러질 만큼 고생했다.

‘수미(Sumi)’라는 이름 때문에 현지 언론이 자신을 일본인으로 소개하자 직접 언론사에 연락해 한국인으로 고쳤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소프라노”라는 정체성이 힘든 시간을 견디게 했다는 설명이다.

처음부터 오래 활동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수미는 데뷔 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만나고 세계적인 음반 회사와 계약하면서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30세가 되기 전 동양인 최초로 뉴욕·런던·파리·빈·밀라노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섰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훈장, 그래미 어워드, 마리아 칼라스 상을 받았다. 그 대가로 가족과 남편이 있는 삶을 포기했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콩쿠르를 열고 세계 곳곳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대회 입상뿐 아니라 이후 솔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할 기회를 후배들에게 주고 싶어서다. 인터뷰 전날에는 주독한국문화원에서 한국·중국·독일 출신 젊은 음악가들을 가르쳤다.

세계적인 인정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켜온 그의 경력과 맞닿아 있다.

AI 요약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대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공연 전날 인터뷰에서 그는 해외 활동의 출발점과 어려움, 후배 음악가를 돕고 싶은 뜻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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