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대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공연 전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40년 음악 활동을 돌아보며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1983년 3월 28일 가방 두 개를 들고 로마에 도착했다. 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하기까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활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눈물 젖은 빵을 먹거나 영양실조로 길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수미’라는 이름 탓에 현지 언론이 일본인으로 소개하자 직접 연락해 한국인으로 바로잡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소프라노”라는 정체성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했다. 이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만나고 세계적 음반 회사와 계약하면서 음악 활동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카라얀은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찬사했다.
그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동양인 최초로 뉴욕·런던·파리·빈·밀라노의 오페라 무대에 섰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훈장, 그래미 어워드, 마리아 칼라스 상을 받았다. 반면 가족과 남편이 있는 삶은 포기했다고 털어놓으며, 이를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음악가들이 유럽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도록 돕고 싶어 한다.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콩쿠르를 열고 세계 곳곳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콩쿠르 입상뿐 아니라 솔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경험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공연 전날 주독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중국·독일 출신 젊은 음악가를 가르쳤다. 독일은 훌륭한 작곡가를 많이 배출했고 생활 방식도 좋아하는 나라라고 했으며, 공연장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에게 베를린 필하모니는 특별한 장소다. 리허설 때는 다음 날 공연에서 장구를 치겠다고 즉흥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전에는 한국이 나를 보호했다면 이젠 내가 엄마의 마음으로 한국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