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아파트 네 채 중 한 채는 준공 30년을 넘겼지만, 연식만으로 모두 철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이 국회 자료를 통해 확보한 지난해 말 현황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17만1185채 가운데 4만4503채(26.0%)가 30년을 넘겼다.
서울은 24.4%였고, 비수도권에서는 경북 36.4%, 전북 34.4%로 비율이 더 높았다.
노후 아파트의 구조체가 곧 수명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 현황에서 준공 31년 이상 아파트의 96.3%는 벽식 구조였다. 전문가들은 관리가 잘된 철근콘크리트 구조체라면 벽식이든 기둥식이든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 큰 생활 불편은 수명이 길어야 30년인 상하수도 배관 등 설비에서 생긴다. 과거에는 배관을 벽과 바닥에 묻어 시공한 경우가 많아 교체할 때 벽과 바닥을 뜯어야 했다. 2013년 재건축 사례 분석에서도 물리적 내구성이 이유인 경우는 11.5%였고, 나머지 88.5%는 기능적·사회적 이유였다.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가르는 핵심은 준공연도보다 용적률이다. 업계에서는 용적률이 200% 이상이면 재건축 사업성이 낮아 리모델링이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1990년을 기점으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용적률이 300~400%로 높아지면서, 용적률이 높은 90년대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1974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아파트도 용적률이 230%를 넘어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택했다.
리모델링은 평당 공사비가 재건축과 비슷하다. 기존 구조를 남긴 채 지하주차장을 만들기 어렵고 내진 보강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축 세대는 기존 세대수의 15%로 제한돼 일반분양을 통한 비용 분담도 제한적이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2026년 9월 기준 전국 152개 단지, 12만1700세대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며, 수직증축 방식은 13개 단지뿐이고 나머지는 수평증축이다. 수직증축은 안전성 검토에 수년이 걸리거나 보완 요구가 반복될 수 있다. 공사 기간은 층수에 따라 다르다.
50~60층 재건축은 리모델링보다 길 수 있지만, 30층대에서는 두 방식이 비슷하다는 업계 설명이 있다. 재건축은 용적률 완화를 받으려면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공공시설이나 토지를 기부채납해야 하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적용된다. 리모델링에는 이런 의무가 없다.
두 방식이 모두 어렵다면 부분 리모델링을 고려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이후 아파트는 증축보다 필요한 배관과 마감재를 바꾸는 편이 경제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분 공사는 전면 공사보다 비용과 기간, 이주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구조체를 활용해 자원 낭비와 건설 폐기물도 줄인다.
서울 송파구 리센츠는 2026년 8월 기존 2층 커뮤니티 건물을 철거하고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새 건물을 열었다. 정기 안전점검과 계획적인 설비 교체 역시 누수·녹물·고장 같은 불편을 줄이는 관리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