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11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 휴머노이드 전문 기업의 서구권 상장은 사실상 처음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가치를 비교할 시장 지표가 부족했던 만큼, 어질리티의 상장 후 평가가 첫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어질리티는 일반 기업공개 대신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처칠 캐피털 XI와 합병하는 방식을 택했다. 합병 신고서는 현지시간 10월 13일 효력을 얻었고, 11월 2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통과되면 합병 회사는 11월 중 ‘AGLT’라는 종목명으로 거래된다.
SPAC 합병은 스팩과 대상 기업이 협상해 기업가치를 정하므로 미래 전망이 평가에 크게 반영될 수 있다. 합병 전 기업가치는 25억달러로 책정됐다. 조달 규모는 6억2,000만달러 이상으로 제시됐으며, 스팩 신탁 계좌 자금 약 4억2,400만달러는 투자자 환매가 없다는 가정에 따른 금액이다.
폭스콘이 주도하고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한 약 2억달러의 투자 약정도 포함된다. 하나증권은 상장 후 시가총액을 약 33억6,000만달러로 추산했다.
어질리티는 오리건주립대 로봇 연구소에서 분사해 두 발로 걷는 로봇 ‘디지트’를 만든다. 도요타 캐나다 공장과 물류기업 GXO 등 고객사의 9개 시설에서 로봇을 운영 중이고, 아마존과 엔비디아 등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러나 합병 신고서상 지난해 매출은 178만1,967달러, 영업손실은 1억4,017만달러였다.
매출원가는 매출의 2.5배였고, 매출의 87%는 로봇 판매에서 나왔다. 매출의 63.5%인 약 113만달러가 투자 주주 회사 등 특수관계자에서 발생했다. 합병 전 기업가치는 지난해 매출의 약 1,400배다. 회사는 현재 보유 현금으로 향후 최소 1년간 운영자금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가치 추정은 근거에 따라 차이가 크다. 증권가에서는 128조~146조원, 현대글로비스의 출자와 지분 변화를 토대로 한 그룹 내부 거래 추산은 약 30조원이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소프트뱅크 보유 지분 9.65%를 약 3억2,500만달러에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회사 전체 가치로 환산한 외부 거래 기준은 5조원 안팎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난해 매출 1,501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증권가 추정치는 매출의 약 850~970배다.
어질리티가 상장 후 어떤 매출 배수를 인정받느냐에 따라 보스턴다이내믹스 가치 추정의 설득력도 달라질 수 있다.
두 회사의 사업 여건은 다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그룹 공장이라는 내부 수요처가 있고,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제를 준비 중이다. 반면 지난해 순손실은 5,284억원이었고, 2021년부터 5년간 누적 순손실은 1조7,558억원이다. 아틀라스도 아직 공장에 대규모로 투입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 미국 조지아 공장에 아틀라스를 투입하는 등 양산 검증을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그룹 고위 임원은 2027년 상장이 쉽지 않다고 밝혔고, 메리츠증권은 상장 시점을 2029~2030년으로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은 상장 시점이나 목표 기업가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어질리티 주가가 강세를 보이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보유 계열사에 로봇 기대감이 되살아날 수 있다. 반대로 약세라면 100조원대 가치 추정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연과 테마 중심에서 실적 검증으로 옮겨가는 로봇 시장에서 어질리티의 평가는 관련 기업들의 수익성에 대한 관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