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관객에게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을 지켜보게 한 뒤 마지막에 카메라의 방향을 돌린다. 2026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 영화에서 달라지는 것은 인물의 행동이나 새로 밝혀지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본 장면을 판단하던 관객의 확신이 흔들린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가 호석과 미옥의 삶을 촬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64분 동안 관객은 주로 카메라에 담긴 호석의 얼굴과 침묵을 본다. 이때 그의 분노와 무기력은 해고와 시위 진압 같은 배경보다 ‘호석이라는 사람’의 특징으로 읽히기 쉽다.
셸리 테일러와 수전 피스크의 연구도 눈앞에서 두드러지는 사람을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카메라가 누구를 중심에 놓는지가 관객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이 효과는 심리학의 ‘행위자-관찰자 비대칭’과 맞닿는다. 1971년 에드워드 존스와 리처드 니스벳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은 상황으로, 타인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제시했다.
1973년 마이클 스톰스의 실험에서는 자기 자리에서 찍힌 대화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익숙한 경향이 나타났지만, 상대편 자리에서 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서는 반대 경향이 나타났다. 시점에 따라 행동의 원인을 찾는 곳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니얼 래시터의 경찰 신문 영상 연구에서도 시점은 강압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줬다. 용의자를 비춘 영상은 강압이 가장 적다고, 형사를 비춘 영상은 가장 크다고 평가됐다. 이 차이는 판사에게 편향을 경고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실제 경찰이 녹화한 영상에서도 나타났다.
《가능한 사랑》에서 예지와 남편 상우의 욕망은 호석과 미옥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카메라가 부부에게 집중할 때 촬영자의 역할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영화 후반까지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호석의 태도도 시점의 문제와 이어진다. 조지아 니그로와 울릭 나이서가 다룬 기억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눈으로 과거를 떠올리거나, 장면 속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보며 기억할 수 있다. 후속 연구에서는 관찰자 시점의 기억이 감정적으로 덜 강렬한 경향도 나타났다.
이 관점에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호석에게 고통스러운 과거를 다시 마주하고, 타인의 판단을 받는 일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두 인물에 대한 판단을 새로 확정하기보다, 그 판단을 만들어온 화면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