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비, 고구려계 비문 해석과 464년 파괴설

잠깐쉬어가요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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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인근에서 수습된 비석 조각 두 점이 맞춰지면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둘러싼 새로운 해석이 제기됐다.

한 조각은 1937년 서월성지에서 수습돼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됐지만, 크기가 작고 글자도 몇 자만 판독돼 주목받지 못했다.

다른 조각은 2020년 월성 해자 진입로 동편 배수로 아래 교란층에서 발견됐다.

처음에는 낯선 예서체 때문에 월성과 무관하거나 시대가 다른 유물로 여겨졌다.

전환점은 2024년 8월 20일 월성 해자 발굴 보고서를 쓰기 위한 자문회의였다.

고광의 연구위원은 2020년 조각의 글씨가 광개토대왕비와 닮았다고 판단했고, 김동하 연구소 주무관이 박물관 사이트에서 본 비슷한 글씨를 떠올리면서 1937년 조각과 대조가 이뤄졌다.

두 조각은 맞물렸고, 잘려 있던 ‘칭(稱)’자도 온전하게 드러났다.

합친 비편에서는 6행 16자 또는 17자가 확인되지만, 판독되는 글자는 약 11자다.

연구자들은 ‘궤(跪)·백(白)·천(天)’을 ‘무릎을 꿇고 고구려 태왕께 아뢴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공(貢)’ 등과 함께 조공 의무를 요구하는 문구라는 해석도 있다.

글씨와 어휘가 고구려 비문을 떠올리게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고구려 서체의 영향을 받은 신라인이 만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비편이 교란층에서 나와 정확한 설치 장소와 건립 시기를 알 수 없으므로 ‘월성 고구려비’라는 명칭이나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

참고로 1976년 월성 동북쪽에서 발견돼 약 18자가 판독된 비편도 있지만, 이는 이번에 맞춰진 두 조각과 별개의 유물이다.

비석의 파괴 시점을 추정하는 맥락에서 464년 ‘수탉 사냥’ 사건이 거론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신라가 머지않아 고구려에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자비왕은 고구려가 신라를 병탄하려 한다고 의심해 전국에 비밀리에 수탉을 모두 잡아 죽이라고 지시했다.

고구려군이 깃털 장식 모자를 쓴 데서 신라인들이 그들을 ‘수탉’이라 불렀고, 왕의 뜻을 알아차린 신라인들은 주둔 중인 고구려인들을 기습했다.

연구자들은 이 사건 뒤 신라인들이 굴욕의 상징이 된 비석을 파괴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파편의 파손 양상과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가설이지, 비문이 464년 사건을 직접 기록했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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