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은 화학적으로 안정하다고 여겨지지만, 미세한 가루가 물과 맞닿으면 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컬럼비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등의 공동 연구팀은 일상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6종의 가루를 물에 넣고 표면 변화를 살폈다.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폴리스티렌(PS)·폴리염화비닐·아크릴·페트 모두에서 활성산소의 일종인 수산화라디칼이 생성됐으며,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강한 PE와 PP에서 양이 특히 많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15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이 제시한 생성 과정은 플라스틱과 물이 맞닿는 경계면에서 시작된다. 물을 밀어내는 플라스틱 표면에서는 물 분자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하지 못하고 배열되며, 계면은 음전하를 띤다. 컴퓨터 계산 결과, 이런 환경에서는 물속 수산화이온이 수산화라디칼로 바뀌기 쉬웠다.
활성산소는 단백질이나 세포 성분과 반응해 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어, 생성 원리를 밝힌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살필 때 입자 자체뿐 아니라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도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다.
실험에서는 그 반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PS 가루를 활성산소에 닿으면 색이 사라지는 노란 염료가 든 물에 넣고 열흘간 저었더니 염료의 약 90%가 분해돼 물이 거의 투명해졌다. 같은 가루를 에탄올 등 다른 액체에 넣었을 때는 색이 유지됐다.
단백질 라이소자임을 PS 입자와 함께 둔 실험에서는 단백질이 표면에 뭉치며 구조가 변형됐고, 활성산소를 없애는 물질로 알려진 카페인을 고농도로 넣자 뭉침이 줄었다. 생쥐 적혈구 실험에서는 일부 세포가 찌그러지거나 깨지는 용혈이 관찰됐으며, 활성산소 생성량이 많은 플라스틱일수록 용혈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실험에서 확인된 결과이지 사람에게서 같은 손상이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연구가 미세플라스틱 관리 정책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가독성과학연구소의 박준우 책임연구원은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 논의를 넘어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고 짚었다.
박범순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연구센터장과 김지혜 박사후연구원은 플라스틱이 다른 물질을 운반하거나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의 화학 반응에도 관여할 수 있다며, 생산·사용·폐기 전반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