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과 분리된 역이 만드는 이동 가능성: ‘외톨이 역’과 지역 철도망

한입만더56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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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이랜드 앨트나브랙 철도역, 2004년 10월 자료사진 · Dennis Troughton · 원본 · CC BY-SA 2.0

경주가 고향인 필자는 서울에서 본가에 갈 때 고속버스로 대략 네 시간을 이동했다. 2010년 신경주역이 영업을 시작한 뒤 KTX를 타면 두 시간 남짓이면 닿았지만, 역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늦은 밤에는 버스를 타기 어렵고 택시비도 부담스러워 부모님이 차로 마중을 나와야 했다.

필자가 두 시간을 아끼는 동안 부모님은 왕복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했다. 이동 시간은 줄었지만 역에서 시내로 가려면 자동차가 필요했던 경험이다. 경주 도심을 지나던 기존 철도 노선은 2021년 폐선됐고, 신경주역은 경주역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았다.

교통철학자 전현우는 포항·군산·진주·원주·남원·안동 등의 역을 ‘외톨이 역’이라 부른다. 역이 시민과 도시를 잇는 만남의 장소가 되지 못하고, 도심 접근성이 낮아 다른 교통수단에 의존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는 《외톨이 역을 떠나며》(민음사, 2026)에서 이를 단순한 역 배치의 실패가 아니라 도시와 지역의 연결망 문제로 분석한다. 문화유산과 환경을 지키려는 판단도 도심 철도를 소음과 단절을 만드는 시설로만 보면 역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충청·전라·경상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보고 광역 철도망을 다시 짜자고 제안한다. 현재 고속철도망은 경부선 중심의 연결망과 강릉선·중앙선 중심의 연결망에 치우쳐 있고, 호남과 영남을 잇는 철도 연결은 거의 없다. 두 지역 내부의 광역 연계도 부실해 광주와 부산 사이에는 직통 KTX가 없다.

세종시도 주변 도시와 철도로 연결되지 않는 사례로 제시된다. 지역 인구가 줄어 버스와 열차가 축소되면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은 생활에 제약을 받고, 인구 유출은 다시 대중교통 축소를 부른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각 도시가 행정 경계 안의 교통만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키면서 다른 도시의 문화·교육·일터를 함께 이용하는 생활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현우가 제시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는 매시간 같은 시각에 열차가 오고 노선 간 환승이 쉬운 ‘규칙 시각표’다. 들쭉날쭉한 배차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를 줄이면 자동차 없이도 이웃 도시를 오가기 쉬워진다.

기후위기 대응의 근거로는 승용차의 생애 가동률이 5% 남짓이라는 점과, 승용차 통행량의 10%를 철도로 옮기면 에너지 소비량은 9%, 탄소배출량은 8% 줄어든다는 그의 계산을 든다. 경주 도심 철도 폐선 뒤 철도 부지에 도시숲이 들어섰지만, 시민들은 도심에서 철도를 이용할 선택지를 잃었다.

글은 이를 도시 전체의 이동 체계에는 눈을 감은 채 나무를 내세운 ‘그린워싱’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자동차 중심 교통을 바꾸려면 녹지 조성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는 이동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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