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三顧草廬).
《삼국지연의》의 슈퍼스타인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신야에 머물던 유비가 직접 몸을 굽혀, 무려 세 번이나 시골의 초려를 찾아간 사건.
한 줄 요약만 봐도 파격적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년의 군웅이, 고작 20대의 젊은 선비를 초빙하러 세 번을 직접 찾아간다?
이 극적인 사건은 후대에 수없이 회자되고 각색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는 고사성어로 남았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에서는 어떻게 묘사됐을까?
유비는 서서에게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그를 만나러 간다.
본인은 대기업 가고, 친구는 중소기업에 처박기
하지만 첫 번째 방문은 실패, 두 번째 방문도 허탕.
심지어 두 번째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었다.
연달아 두 번이나 허탕을 치자, 성미 급한 장비는 물론이고 점잖은 관우마저 불만을 터뜨린다.
장비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도 없는 백면서생 만나러 세 번? 제정신이유?!"
관우 "형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정성이 지나칩니다."
하지만 유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환공은 이름 없는 서생 만나러 다섯 번 찾아갔다! 천하제일의 현인 만나는데 세 번이 과하냐?!"
세 번째로 찾아간 유비는 간신히 제갈량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하필 제갈량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깨우기는커녕, 그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몇 시간이나 서서 기다린다.
잠에서 깨어난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라는 대전략을 설파하며,
앞으로 어떻게 천하를 도모해야 할지 상세히 가르쳐준다.
유비는 감격하지만, 문득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그런데 선생! 혹시 이 가르침으로 출사를 대신하실 건 아니겠지요?"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세상에 나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제갈량이 출사를 거절하자 유비는 필살기눈물을 쏟으며 간청한다.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는다면, 천하의 백성들은 어찌하란 말씀이십니까!"
결국 그의 진심에 감동한 제갈량은 출사를 결심하고, 이튿날 유비를 따라 초려를 떠난다.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묘사된 삼고초려다.
아무리 봐도 낭만적인 창작 같다.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도원결의, 오관육참, 화용도처럼 나관중이 꾸며낸 얘기가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삼고초려는 정사에도 기록된 사건이다!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由是先主遂詣亮,凡三往,乃見。」
이에 선주(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는데,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야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사건을 직접 겪은 제갈량 본인도 삼고초려를 언급했다.
바로 그 유명한 《출사표》에서.
「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
선제(유비)께서는 신의 미천함을 개의치 않으시고,
몸소 자신을 낮추어 세 번이나 초려로 찾아오셨으며, 당시 천하의 일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갈량 본인의 감상까지 적혀 있다.
「由是感激,遂許先帝以驅馳。」
이에 깊이 감격한 저는 선제를 위해 힘껏 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즉, 유비가 세 번이나 초려를 방문했고,
제갈량이 그 정성에 감동하여 출사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명백한 실화다.
혹시 과거 중국에서도 이런 사건이 흔했을까?
아니,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쏟은 군주들은 여럿 있었다.
상나라의 탕왕은 이윤을 얻기 위해 사신을 다섯 차례나 보냈다.
전국시대의 신릉군은 직접 수레를 몰고 늙은 은자 후영을 영접했으며,
후한의 광무제는 옛 친구 엄광을 초빙하려고 세 차례나 시도했다.
명나라의 주원장 역시 유기를 얻기 위해 거듭 사람을 보내 설득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삼고초려와 조금씩 달랐다.
본인이 찾아가기보단 주로 사신을 보냈으며,(탕왕, 주원장)
직접 찾아갔더라도 한 번에 그친 경우가 많았고,(신릉군)
여러 번 시도해도 등용에 실패했다.(광무제)
반면 유비는 직접 세 번이나 초려를 찾아갔고, 마침내 제갈량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극적인 사례는 거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제갈량은 자신을 알아준 유비를 평생 잊지 않았으며,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아들 유선을 보좌했다.
그리고 유비 사후 11년이 지난 234년.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북벌을 이끌다가 오장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 차례의 방문으로 시작된 인연이,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한 것이다.
이처럼 군주가 거듭 직접 찾아가 인재를 얻고,
그 인재가 군주 사후에도 뜻을 이어간 삼고초려는
중국사의 수많은 인재 등용 일화 가운데서도 꽤 인상적인 사례다.
이 극적인 일화는 후대의 유학자와 사대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가장 이상적인 군신 관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또한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랑받으며 수많은 문학과 연극의 소재가 되었고,
그 명성은 무려 1,8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끝!
여자 NPC들 취미(보너스 만화)
만화 홈페이지 - https://historymyth.kr
제갈량 1편 - https://www.fmkorea.com/10369142352
제갈량 2편 - https://www.fmkorea.com/10373693024
제갈량 3편 - https://www.fmkorea.com/10394902030













《삼국지연의》의 슈퍼스타인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신야에 머물던 유비가 직접 몸을 굽혀, 무려 세 번이나 시골의 초려를 찾아간 사건.
한 줄 요약만 봐도 파격적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년의 군웅이, 고작 20대의 젊은 선비를 초빙하러 세 번을 직접 찾아간다?
이 극적인 사건은 후대에 수없이 회자되고 각색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는 고사성어로 남았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에서는 어떻게 묘사됐을까?
유비는 서서에게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그를 만나러 간다.
본인은 대기업 가고, 친구는 중소기업에 처박기
하지만 첫 번째 방문은 실패, 두 번째 방문도 허탕.
심지어 두 번째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었다.
연달아 두 번이나 허탕을 치자, 성미 급한 장비는 물론이고 점잖은 관우마저 불만을 터뜨린다.
장비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도 없는 백면서생 만나러 세 번? 제정신이유?!"
관우 "형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정성이 지나칩니다."
하지만 유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환공은 이름 없는 서생 만나러 다섯 번 찾아갔다! 천하제일의 현인 만나는데 세 번이 과하냐?!"
세 번째로 찾아간 유비는 간신히 제갈량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하필 제갈량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깨우기는커녕, 그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몇 시간이나 서서 기다린다.
잠에서 깨어난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라는 대전략을 설파하며,
앞으로 어떻게 천하를 도모해야 할지 상세히 가르쳐준다.
유비는 감격하지만, 문득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그런데 선생! 혹시 이 가르침으로 출사를 대신하실 건 아니겠지요?"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세상에 나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제갈량이 출사를 거절하자 유비는 필살기눈물을 쏟으며 간청한다.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는다면, 천하의 백성들은 어찌하란 말씀이십니까!"
결국 그의 진심에 감동한 제갈량은 출사를 결심하고, 이튿날 유비를 따라 초려를 떠난다.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묘사된 삼고초려다.
아무리 봐도 낭만적인 창작 같다.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도원결의, 오관육참, 화용도처럼 나관중이 꾸며낸 얘기가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삼고초려는 정사에도 기록된 사건이다!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由是先主遂詣亮,凡三往,乃見。」
이에 선주(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는데,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야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사건을 직접 겪은 제갈량 본인도 삼고초려를 언급했다.
바로 그 유명한 《출사표》에서.
「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
선제(유비)께서는 신의 미천함을 개의치 않으시고,
몸소 자신을 낮추어 세 번이나 초려로 찾아오셨으며, 당시 천하의 일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갈량 본인의 감상까지 적혀 있다.
「由是感激,遂許先帝以驅馳。」
이에 깊이 감격한 저는 선제를 위해 힘껏 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즉, 유비가 세 번이나 초려를 방문했고,
제갈량이 그 정성에 감동하여 출사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명백한 실화다.
혹시 과거 중국에서도 이런 사건이 흔했을까?
아니,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쏟은 군주들은 여럿 있었다.
상나라의 탕왕은 이윤을 얻기 위해 사신을 다섯 차례나 보냈다.
전국시대의 신릉군은 직접 수레를 몰고 늙은 은자 후영을 영접했으며,
후한의 광무제는 옛 친구 엄광을 초빙하려고 세 차례나 시도했다.
명나라의 주원장 역시 유기를 얻기 위해 거듭 사람을 보내 설득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삼고초려와 조금씩 달랐다.
본인이 찾아가기보단 주로 사신을 보냈으며,(탕왕, 주원장)
직접 찾아갔더라도 한 번에 그친 경우가 많았고,(신릉군)
여러 번 시도해도 등용에 실패했다.(광무제)
반면 유비는 직접 세 번이나 초려를 찾아갔고, 마침내 제갈량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극적인 사례는 거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제갈량은 자신을 알아준 유비를 평생 잊지 않았으며,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아들 유선을 보좌했다.
그리고 유비 사후 11년이 지난 234년.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북벌을 이끌다가 오장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 차례의 방문으로 시작된 인연이,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한 것이다.
이처럼 군주가 거듭 직접 찾아가 인재를 얻고,
그 인재가 군주 사후에도 뜻을 이어간 삼고초려는
중국사의 수많은 인재 등용 일화 가운데서도 꽤 인상적인 사례다.
이 극적인 일화는 후대의 유학자와 사대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가장 이상적인 군신 관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또한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랑받으며 수많은 문학과 연극의 소재가 되었고,
그 명성은 무려 1,8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끝!
여자 NPC들 취미(보너스 만화)
만화 홈페이지 - https://historymyth.kr
제갈량 1편 - https://www.fmkorea.com/10369142352
제갈량 2편 - https://www.fmkorea.com/10373693024
제갈량 3편 - https://www.fmkorea.com/10394902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