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뒤 이상호와 이정립·최위석 등은 보천교 증산교단을 다시 일으키고 새 교단을 세우려 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아카이브에 따르면 이들은 최위석의 합정동 집에서 대법사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증산교운동을 다시 전개하는 기반이 됐다.
결성은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다.
최위석은 8월 20일 신도 40여 명과 치성을 올린 뒤 동지들을 더 모으자고 했고, 9월 19일에는 이상호·이정립·최위석 등 145명이 모여 교단을 출범시켰다.
날짜상 치성에서 출범까지 약 한 달의 조직 과정이 이어진 셈이다.
대법사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본부를 두고 교단 운영 조직을 마련했으며, 최위석은 기획부장을 맡았다.
합정동에서 결성된 모임이 본부와 담당 직책을 갖춘 교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1947년 이상호는 최위석과 결별해 별파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증산교로 불렸고, 이후 이정립이 명칭을 증산교본부로 바꾸었다.
대법사 결성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교단 운동은 두 사람의 결별을 거치며 별도의 조직과 이름으로 이어졌다.
참고 자료
이상호, 합정동 대법사에서 증산교로 이어진 교단의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