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공황은 1929년 8월 경기 팽창이 끝나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에야 막을 내렸다. 주식시장 붕괴는 중요한 계기였지만, 그것만으로 대공황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주가는 1929년 9월 고점에서 1932년 7월 저점까지 가치의 80~85%를 잃었다. 충격 뒤 자동차·냉장고 같은 내구재 소비는 줄었지만 식품과 연료 지출은 대체로 유지됐다. 경제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주가 폭락만 있었다면 심각한 경기침체는 겪었겠지만 대공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기는 무역에도 번졌다.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에 다른 나라들이 보복 관세로 맞서면서 세계 무역은 1929년 약 30억 달러에서 1933년 10억 달러 미만으로, 3분의 2 이상 줄었다. 미국 경제 전체의 위축 폭은 약 3분의 1이었다. 다만 당시 미국은 국내 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무역 감소는 대공황의 단독 원인이라기보다 여러 악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연방준비제도(Fed)의 대응도 위기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목된다. 투기를 억제하려고 1928~1929년 금리를 올렸고, 금본위제가 각국의 금리와 통화정책을 연결하면서 해외 경기에도 충격을 줬다. 1930년 가을부터 1933년 겨울까지 은행 공황이 이어지는 동안 Fed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통화량은 거의 30% 줄었고, 디플레이션은 빚 부담과 파산을 키웠.
경기 위축은 1933년 3월 저점에 이르렀으며, 당시 상업은행 시스템이 붕괴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국 은행 휴업을 선언했다. 이후 금융 개혁이 진행됐지만 회복은 순탄치 않아 1937년 다시 경기 후퇴를 겪었다. 생산과 고용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참고 자료
대공황, 주가 폭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1929~1941년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