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박지원은 삼종형 박명원과 함께 청나라 사절단에 참여했다. 사절단은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러 갔고, 박지원은 6월 25일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과 열하를 둘러본 뒤 10월 27일 귀국했다. 열하는 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청더에 해당하는 황제의 여름 별궁 지역이다.

이 여행의 기록이 『열하일기』다. 박지원은 동북 중국과 남만주를 거치며 본 풍경뿐 아니라 청나라 문인들과 나눈 대화도 자세히 적었다. 당시 조선에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청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그는 청의 발전한 문물을 배워 조선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보았다. 여행기는 이 주장을 현장에서 얻은 견문과 함께 펼친 글이었다.
책에는 청의 문물뿐 아니라 사회제도와 경제체제에 대한 관찰도 담겼다. 박지원은 특히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규격화된 수레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청에서 본 것을 단순히 신기한 구경거리로 남기지 않고 조선의 제도와 생활을 고치는 방안으로 연결한 셈이다. 『열하일기』가 여행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실 개혁을 논하는 저술인 이유다.
참고 자료
박지원은 왜 베이징을 지나 열하까지 갔을까? 『열하일기』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