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홍문은 수원화성 북쪽의 수문, 곧 북수문이다. 정조대왕 때 수원천은 여름 장마마다 범람했고, 성을 쌓기 시작하면서 하천 폭을 넓히고 물길을 정비했다. 화홍문 밖으로도 586~703m 구간을 준설하고, 너비 약 23.4m·깊이 1.5~3m로 팠다. 성곽의 문이면서 물을 다스리는 시설이었던 셈이다.

공사는 1794년 7월 9일 주춧돌을 놓으며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13일 기둥을 세우고 상량했으며, 이듬해 1월 13일 누각까지 완성됐다. 수원천 위에 7개의 홍예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세운 구조로, 다리는 너비 9.6m, 길이 29.3m였다. 물이 통과하는 아치 위로 사람이 오가는 길과 감시 공간을 함께 마련했다.
화홍문은 홍수에도 온전했던 것은 아니다. 1846년 기록에는 큰비로 북수문 아래 전돌과 홍예석문, 청판석이 무너지고 문루도 붕괴했다고 적혀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록과 현재 모습의 차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안팎 홍예 사이에 돌기둥을 세운 것으로 나오지만, 지금은 그 사이까지 홍예로 이어져 있다. 홍수 뒤 튼튼하게 고쳐 지은 결과인지, 처음부터 지금 형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참고 자료
정조대왕은 왜 화홍문 앞 수원천부터 손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