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북쪽의 화홍문은 북수문이라고도 불리는 수문으로, 성곽의 통로이자 수원천 물길을 잇는 시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정조 때인 1796년에 세워졌다고 정리한다. 수원시 기사는 공사 기록을 들어 1794년 7월 9일 주춧돌을 놓고 그해 10월 13일 기둥을 세워 상량했으며, 1795년 1월 13일 누각이 완성됐다고 전한다. 두 자료는 연도를 달리 제시하며, 기사는 공사 단계별 날짜를 기록했지만 두 연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화홍문은 여름마다 범람하던 수원천을 다스리기 위해 마련됐다. 화성 축성 때 하천을 준설했고, 문 밖으로도 586~703m 구간을 정비했다. 당시 기록에 따른 너비는 약 23.4m, 깊이는 1.5~3m다. 수문에는 석조 아치 일곱 개를 두었고, 그 위 다리는 너비 9.6m, 길이 29.3m에 이르렀다. 누각은 북쪽을 살피는 경계 시설이었으며, 아치에는 쇠살창을 설치해 침입에도 대비했다.
홍수 피해와 보수도 기록에 남아 있다. 1846년 수원부 기록은 큰비로 화홍문 아래 전돌과 홍예석문 등이 무너지고 문루도 전체가 무너졌다고 전한다. 1848년 기록에는 1847년부터 석재와 기와를 준비하고 그해 9월 북수문의 박석과 홍예석을 쌓은 뒤 북수문 등을 ‘개건’했다고 적혔다. 수원시 기사는 여기서 개건을 고쳐 세우는 뜻으로 풀이한다. 또 1922년 홍수 때에도 누각이 무너졌다고 소개한다. 현재 화홍문의 홍예 구조가 화성성역의궤 도설과 다른 점은 확인되지만, 홍수 뒤 복원 과정에서 달라졌는지 처음부터 현재 모습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화홍문은 물길을 관리하고 성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함께 갖췄으며, 그 구조와 보수의 역사는 두 기능이 실제로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정조대왕 때 축조한 화홍문, 수문과 성곽의 기능을 함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