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은 여성성이 강한 인물을 주로 맡아 왔지만, 2016년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구두 공장 사장 찰리 역을 선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뮤지컬 《렘피카》에서 미래주의 예술가 필리포 마리네티를 연기하며 또 다른 변신에 나섰다. 작품은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으며,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러시아 혁명,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호영은 2026년 3월 21일부터 6월 20일까지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공연된 무대에서 조형균과 마리네티 역을 나눠 맡았다.

그는 러시아 수용소장으로 먼저 등장해 굵고 절도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 뒤 마리네티로 변한다. 어머니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할 만큼 목소리부터 달라졌고, 마리네티일 때는 머리를 헝클어 괴짜의 면모를 살렸다. 파시스트가 된 뒤에는 머리를 단정히 넘기는 등 외양에도 변화를 줬다. 김호영은 이를 직접 구상했으며 공연 중 머리를 만지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김호영에게 새 역할을 밀어붙일 계기를 준 것은 작곡가 맷 굴드의 말이었다. 마리네티를 마음껏 표현하라며 “파괴권”을 주겠다는 주문에, 그는 24년간의 공연 경력에서 한 번도 맞지 않았던 캐릭터와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느꼈다. 오디션에서 같은 노래를 세 번째 요청받자 심사위원 쪽으로 뛰어가 물통을 집어 던진 일도 있다. 제작진이 찾던 마리네티의 무례함과 괴짜성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마리네티는 자유로운 미래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고, 결국 파시즘으로 기우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김호영은 세계대전으로 친구와 가족을 잃은 그가 탱크와 속도, 엔진에 빠져 극단으로 향한다고 해석했다. ‘미쳤다고요? 천재라고요? 둘 다일 수도 있겠죠’라는 대사도 인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로 꼽았다.
참고 자료
김호영, 《렘피카》에서 ‘파괴권’으로 만난 마리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