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은 2026년 뮤지컬 《렘피카》에서 미래주의 예술가 필리포 마리네티를 맡았다.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아르데코의 여왕’으로 불리는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파란만장한 삶과 러시아 혁명,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연 일정은 2026년 3월 21일부터 6월 20일까지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였다.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155분이었으며, 관람 등급은 14세 이상이었다.

김호영에게 마리네티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역할이었다. 2002년 데뷔작 《렌트》의 엔젤을 비롯해 여성성이 강한 캐릭터를 거의 도맡다시피 했고, 2016년에는 《킹키부츠》에서 구두 공장 사장 찰리를 연기했다. 《렘피카》에서는 러시아 수용소장으로 먼저 등장한 뒤 마리네티를 연기해 사실상 1인 2역에 가까운 변신을 보여줬다. 수용소장일 때는 굵고 절도 있는 목소리를 냈는데, 어머니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지인들은 “성별을 갈아 끼웠냐”고 농담했다고 한다. 마리네티로 등장할 때는 머리를 헝클어 괴짜 같은 인상을 만들고, 파시스트가 된 뒤에는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넘겼다. 이 역은 조형균과 나눠 맡았다.
변화의 계기는 작곡가 맷 굴드의 말이었다. 굴드는 마리네티를 마음껏 표현하라며 “너에게 파괴권을 주겠다”고 했고, 김호영은 그 말이 자신을 깨웠다고 밝혔다. 지난 24년간 공연하며 한 번도 맞지 않았던 캐릭터와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오디션에서 같은 노래를 세 번째 부르게 되자 심사위원 쪽으로 뛰어가 물통을 집어 던진 일화도 전했다. 김호영은 자유로운 미래주의를 외치면서도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고 끝내 파시즘으로 급선회하는 마리네티를, 전쟁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뒤 속도와 기계에 사로잡힌 인물로 해석했다. “미쳤다고요? 천재라고요? 둘 다일 수도 있겠죠”라는 대사도 그 모순을 드러낸다. 그는 ‘호이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중이라며, 자신에게 ‘기대감을 갖고 사는’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김호영의 창작 의욕 깨운 ‘파괴권’…《렘피카》의 마리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