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서울 관철동 249번지에서 창간했다. 첫 호는 배대판 4면의 석간이었다.
신문명진보주의를 내걸고 출발했지만, 자체 인쇄시설이 없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인쇄시설을 빌려야 했다.
창간호 뒤 제2호는 3월 7일, 제3호는 9일에 나왔고, 제4호는 한참 뒤인 4월 28일에야 발행됐다.
초창기의 불안정은 인쇄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창간 후 반년도 지나기 전에 기사 압수처분을 30여 차례 받았고, 강우규 의사의 사형선고 보도와 논설 ‘자연의 화’는 총독부의 제재를 불렀다.
조선일보는 민간신문으로는 처음으로 1주일 정간 처분을 받았다.
정간이 풀리던 날인 1920년 9월 5일, 당국의 정간을 비판하는 논설을 싣자 이번에는 무기정간 처분이 내려졌다.
정간은 두 달 뒤 풀렸지만, 재정난으로 신문은 12월 24일까지 발행되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골수에 맺힌 조선인의 한’을 10회에 걸쳐 연재하는 등 보도를 이어갔지만, 정간은 네 차례에 이르렀고 그중 한 번은 1년 4개월이나 지속됐다.
3월 5일 창간호를 낸 뒤 제4호까지 가는 데도 한 달 넘게 걸린 신문은, 발행과 정지를 거듭하며 초창기를 보냈다.
참고 자료
조선일보 창간호는 4면 석간…한 달 넘게 멈춘 초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