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atthew Syed
솔직히 이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망설여진다. 예전에 여기서 딱 한 번 사용했다가 당시 스포츠 편집자에게 한 소리들었고, 그는 마지못해 통과시켰다. 하지만 때로는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이것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뛰어난 축구선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제는 이 표현을 꺼내야겠다. ‘찌질한 인간(tosser)’이 되어버렸다고 말이다.
호날두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거의 2,000단어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자기변명을 하려던 철없는 유명인이 오히려 스스로 완전히 망가뜨리고 할복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일로, 이보다 더 처참한 자기파괴 행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과정은 너무나 익숙하다. 유명해져도 자신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들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똑같은 사람으로 남을 것이며, 항상 겸손하고 현실적인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베컴의 자서전을 대필할 때 저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단지 사랑을 쏟아붓는 사람들, 사인받으려 몰려드는 사람들, 주변을 맴도는 기생성 인물들, 아첨으로 일관하는 언론 인터뷰어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고대의 종교의식처럼 이름을 끊임없이 연호하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독립적인 조언을 건네야 할 에이전트와 상업 매니저들이 직장을 지키기 위해 결국 아부하며, 셀러브리티의 귀에 끊임없이 향유를 흘려 넣듯 아첨을 쏟아붓는 행태에 있다.
바로 이때부터 현실과의 거리가 생긴다. 바로 이때부터 축구선수라는 사람이, 아니, 솔직히 말해 돼지 오줌보나 차라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자신을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수는 에이전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명을 하나 발표하려고 해.” 그러고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들어도 “친구야, 너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구나”라고 할 만큼 황당한 내용의 대본을 내놓는다.
그런데 주변의 아첨꾼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선수의 자존심에 기름을 더 붓는다. 그리고 결국 대필 작가에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실제 글로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수백만 명에게 공개되고, 사람들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아직 성명을 읽지 않았다면 미안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데이비드 브렌트(영국 코미디 ‘더 오피스’에서 허세와 착각에 빠진 주인공)식 망상의 교과서에서 바로 튀어나온 걸작이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내 코미디에는 지적인 무게감이 담겨 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작해야 마땅하다.
호날두가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노르웨이전에 출전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영웅'의 머릿속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결장을 넘어 그 이상, 즉 음모, 존중, 카르마에 관한 거대한 서사로 변해버렸다.
워낙 황당한 대목이 많아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언급해야겠다. 호날두는 자신이 교체 투입되지 않은 이유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성명을 발표하자고 대표팀 감독에게 직접 요청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 성명이다. 조항까지 들어간 성명. 마치 중동 평화협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호날두는 인스타그램 글에서 자신은 감독의 결정에 단 한 번도 간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직후, 감독이 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놓고 자신이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직접 설명했다.
호날두는 자신이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독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감독이 자신을 팀에 필요로 하면서도 모든 경기에 출전시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어떤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서고, 어떤 경기에서는 벤치에 앉는다. 그게 축구다. 호날두는 벤치에 앉은 뒤 교체로 투입되지 않은 채 몸을 풀었다는 것 역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자신이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특별한 도덕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감독들은 늘 교체 선수들에게 몸을 풀게 한 뒤 그중 일부를 끝내 투입하지 않는다. 전술적인 상황은 바뀐다. 경기는 감독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게 축구다. 이런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찌질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할 수 없다. 사실 사전에 적힌 정의가 바로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호날두의 글 자체가 셀프 패러디의 걸작이라 이야깃거리는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성명서 대본에는 마치 인질극 비디오의 피해자처럼 감독이 읽어야 했던 황당무계한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펠레나 마라도나급 선수를 몸 풀게 해놓고 정작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크리스티아누, 왜 하필 펠레와 마라도나뿐인가요? 무함마드, 그리스도, 달라이 라마, 여호와, 알라, 제우스, 오딘은 왜 빼놓았나요? 글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저는 속으로 ‘앨런 파트리지(영국 희극 캐릭터)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의 브렌트 부장님(데이비드 브렌트)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포르투갈 대표팀의 조르제 제수스 감독에게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다면, 그를 영구히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자아 덩어리는 이제 41세고, 포르투갈 대표팀은 그가 없을 때 더 좋은 경기를 펼친다.
포르투갈은 최근 4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중 3경기에는 호날두가 아예 관여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팀에서 빼낸 것이 적지 않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선수의 존재는 어떤 팀에도 치명적인 비수가 된다.
팀원 중 한 명이 팀 전체가 자신의 영광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팀이 모아놓은 전력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만과 자만, 즉 ‘hubris’라는 주제에 문학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가 시대를 거듭하며 계속 반복되는 것도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는 늘 데이비드 브렌트야말로 '진상 짓'의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날두 역시 턱밑까지 바짝 추격해 왔다. 브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팀(TEAM)이라는 단어에 ‘나(I)’는 없을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ME)’는 있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