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FourTwo] 미켈 “맨유 유니폼을 입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했다…엄청난 실수였다”

아메리카노한잔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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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FourTwo] 미켈 “맨유 유니폼을 입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했다…엄청난 실수였다”
10대 시절 존 오비 미켈은 프리미어리그 두 거함 사이에서 벌어진 악명 높은 이적 분쟁에 휘말렸다. 미켈이 비밀 비행편부터 알렉스 퍼거슨 경과의 담판까지,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이야기했다.
[2005년 맨체스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존 오비 미켈] / 사진: AFP via Getty Images
2003년 핀란드에서 열린 U-17 세계선수권에서 나이지리아 대표로 경기를 치르기 두 시간 전, 우리 유니폼이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등에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기다리고 있었고, 도착하자 모두 자기 것을 펼쳐봤죠. 제 유니폼을 봤는데 ‘Mikel’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뭐야?! 이게 뭐지?’ 싶었어요. 원래 제 이름인 Michael이 들어가야 했거든요. 그쪽에서는 실수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안 돼. 시간이 없어. 이제 경기하러 가야 해. 미안하지만 그냥 입어야 해.”
그 유니폼을 입고 대회를 정말 잘 치렀습니다. 그래서 ‘좋아, 그냥 이 이름으로 가자!’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이름은 미켈이 됐습니다.
당시 저는 16살이었습니다. 그 U-17 대회는 저를 세상에 보여줄 무대였고, 제 이름을 알릴 기회였어요. 대회를 정말 잘 치르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미켈이라는 원더키드’를 알기 시작했고, 에이전트와 구단들이 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어떤 에이전트는 우리 대표팀 호텔 안으로까지 들어와 사람들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에이전트
“그 애 어디 있어요?”
나이지리아축구협회는 이미 호텔 경비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해둔 상태였어요.
나이지리아축구협회
“누가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라. 방 번호는 절대 알려주지 마라.”
그 에이전트 옆에는 현금으로 가득 찬 서류가방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현금은 약 £50,000 정도였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말했습니다.
에이전트
“들어봐. 네덜란드의 큰 구단이 널 원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 팀과 계약하고, 나와도 계약해.”
저는 겨우 16살이었는데 벌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나중에 맡게 된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 창의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였습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제가 정말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빅클럽 가운데 하나와 계약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스날, 바이에른 뮌헨 등 정말 많은 팀이 저를 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을 만났고, 그곳에 머물면서 한두 달 정도 훈련했어요.
원래 제 나이라면 아카데미에서 훈련했어야 했는데 저는 항상 1군과 훈련했습니다. 제가 너무 잘했거든요! 로이 킨, 폴 스콜스, 니키 버트, 뤼트 판 니스텔로이, 올레 군나르 솔샤르, 디에고 포를란, 게리 네빌,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훈련했어요.
때로는 그냥 그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웠어요. 폴 스콜스는 오른쪽, 왼쪽, 중앙 어디로든 공을 정확하게 뿌렸습니다.
정말 엄청난 선수였어요. 하루 종일 보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죠.
제가 그들과 함께 훈련할 때 퍼거슨 경은 항상 저를 로이 킨과 같은 팀에 넣었습니다. 저를 지켜줄 사람이 있어야 했으니까요! 다들 알다시피 폴 스콜스는 태클을 정말 못했잖아요.
갑자기 들어와서 ‘쾅!’ 하는 식이었죠. 그러면 킨이 저를 지켜준다고 스콜스에게 한 번 되갚아주곤 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맨유에서 보낸 시간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다음부터가 긴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아프리카에서 이적해 계약하려면 18살이 돼야 했습니다.
저는 16살이었기 때문에 맨유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좋아, 일단 2~3개월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데려와서 두 달 정도 팀과 훈련시키자.’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그런 방식을 반복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나이지리아로 돌려보냈는데, 제가 집에 있는 동안 첼시가 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첼시는 에이전트를 보냈고, 그는 계약서를 들고 와서 저를 설득했습니다.
맨유가 아니라 첼시로 가라고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봤어요.
‘그래, 첼시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그래서 첼시 테스트를 받으러 갔습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곧바로 저와 계약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같았습니다.
저는 아직 18살이 아니었으니까요.
[린에서 뛰고 있는 존 오비 미켈] / 사진: Alamy Stock Photo
그런데 첼시는 맨유처럼 저를 다시 집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동안 노르웨이에서 린 오슬로 소속으로 뛰도록 준비해줬어요. 그곳에 아파트도 마련해줬고, 첼시는 저와 제 가족, 친구들까지 챙겨줬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동료 세 명도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외로움이나 향수병을 느끼지 않도록 첼시가 그 선수들을 저와 함께 린으로 보냈어요.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선수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죠. 셋 모두 정말 좋은 선수였지만 첼시가 그들 전부와 계약할 생각은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아마 한두 명과 계약한 뒤 임대를 보내는 정도였겠죠. 하지만 그들이 첼시에서 뛸 일은 없었습니다. 첼시가 원했던 선수는 저였어요.
첼시는 그 선수들이 제 옆에 있어주길 원했습니다. 나이지리아 U-20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고, 같이 자랐던 친구들이었어요. 지금도 친구로 지냅니다.
치네두 오바시는 이후 독일에서 뛰었지만, 다른 두 명인 에마뉘엘 사르키와 에제키엘 발라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18살이 된 뒤 린에서 경기에 출전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 사실을 알고 노르웨이로 관계자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1.5m 정도 규모의 사전계약서를 가지고 왔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는 저를 얼떨결에 린 관계자들과 함께 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제 에이전트는 아무도 없었어요. 저를 대리해줄 사람도 없었고, 가족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어린아이였던 저 혼자 앉아서 계약서에 사인한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건 옳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조언해줬어야 했어요.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건 정상적이지 않죠.
[2005년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공개된 존 오비 미켈] / 사진: AFP via Getty Images
모든 일이 같은 날, 불과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발표하기 위한 기자회견까지 이미 준비돼 있었어요. 그날 훈련을 마친 뒤 첼시가 저와 함께 있으라고 보냈던 나이지리아 동료 세 명에게 말했습니다.
존 오비 미켈
“너희끼리 먼저 집에 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 선수들은 집에서 제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TV를 켰는데 제가 기자회견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나온 거예요!
동료들이 저한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제 휴대전화는 없었습니다. 이미 누군가 가져가버렸거든요. 당시 기자회견에서 맨유 유니폼을 입고 찍힌 몇몇 사진을 보면 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앉아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곧바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어요. 다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고, 해결하는 데 거의 2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첼시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자 격분했습니다. 자기들이 저를 노르웨이로 보냈고, 계속 돌봐주고 있었으니까요. 첼시는 말했습니다.
첼시
“안 돼. 우리는 널 보내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에이전트를 오슬로로 보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거죠. 린과 맨유 관계자들은 아무도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특히 첼시가 찾지 못하도록 저를 한 호텔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첼시와 제 에이전트가 제가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제 에이전트가 몰래 찾아왔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에 저를 몰래 태워 그곳에서 빼냈습니다. 우리는 런던으로 갔고 첼시는 경기장 근처의 좋은 아파트를 마련해줬어요.
결국 FIFA가 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 동안 그곳에서 거의 1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FIFA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잉글랜드축구협회까지 개입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존 오비 미켈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 사본] / 사진: Manchester United via Getty Images
두 구단 모두 저를 원한다는 사실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구단 두 곳이 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로서 제 위상은 올라갔으니까요. 하지만 그쯤 되자 저는 그냥 축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점점 답답해졌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천장만 바라봤습니다. 어디에도 갈 수 없었어요.
훈련조차 할 수 없었고, 어느 팀에서도 뛸 수 없었습니다. FIFA는 저에게 어떤 축구 구단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했어요. 어느 구단 관계자도 저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저 혼자였어요.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와 울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저 역시 매일 울었어요. 저도 축구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앉아 있으면서 선수 생활의 1~2년을 날려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그 계약을 맺은 제 어리석은 실수에서 시작된 일이었어요. 저는 제가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제 무리뉴가 이미 첼시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저는 무리뉴를 만났어요. 원래는 만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무리뉴와 만나기 위해 정말 많은 비밀 작전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차에 타면 2~3km 정도 이동한 뒤 내려줬고, 다른 차가 와서 저를 태운 뒤 또 2~3km를 이동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차를 바꿔 탄 끝에 무리뉴가 기다리고 있는 비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어요. 무리뉴는 자신이 얼마나 저를 첼시로 데려오고 싶어 하는지 말해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첼시에서 뛰어야 했어요.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사실상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이 아이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나는 이 선수를 우리 구단에 원한다.’
첼시는 제가 반드시 첼시에 합류할 수 있도록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물러서지 않았죠. 끝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퍼거슨 경이 말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경
“좋아. 내가 직접 그 아이와 만나겠다. 20~30분만 나한테 줘. 내가 해결할 수 있어.”
방 안에는 퍼거슨 경과 저 둘뿐이었습니다. 제 에이전트는 밖에 있었어요. 제가 들어가기 전 에이전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전트
“봐, 저 사람이 널 설득하려 할 거야. 그리고 이 면담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결정한다.”
“네가 방에서 나왔을 때 그 사람에게 ‘예’라고 말했다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든 고개만 끄덕이고 ‘아니오’라고 해.”
정확히 그렇게 했습니다.
[미켈은 결국 2006년 8월 첼시 선수로 공개됐다] / 사진: Alamy Stock Photo
저는 아주 긴 테이블 끝에 앉았습니다. 코로나 시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 쓰던 테이블처럼 길었어요. 퍼거슨 경이 제게 말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경
“들어봐. 첼시가 대체 뭘 제안한 거냐?”
“돈 때문이야?”
“말해봐. 내가 더 줄게.”
“구단의 모든 사람이 널 원해. 로이 킨도, 스콜시도 모두 네 소식을 묻고 있어.”
“그 선수들은 네가 필요하고, 우리 구단도 네가 필요하다.”
“내가 널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겠다.”
저는 들어가기 전에 에이전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말했어요.
존 오비 미켈
“아니요, 보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첼시로 가고 싶습니다.”
역대 최고의 감독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 앉아서 얼굴을 보면서 거절해야 했으니까요. 알렉스 퍼거슨에게 ‘아니오’라고 말한 선수는 역사상 몇 명 되지 않을 겁니다.
루이스 피구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첼시로 가고 싶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미 모든 것을 우승한 구단이었어요.
저는 제가 직접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퍼기가 점점 더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였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죠.
‘이제 그 유명한 헤어드라이어 한 번 맞겠구나.’
※ 퍼거슨의 ‘헤어드라이어’: 알렉스 퍼거슨이 선수 얼굴 가까이에서 거칠게 소리치며 질책하던 방식을 가리키는 유명한 표현이다. (작성자 주)
하지만 헤어드라이어는 없었습니다. 30~40분 정도 지나자 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 약 일주일 뒤 맨유가 첼시에 연락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좋아. 이 아이가 자기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걸 이해한다.”
“더 이상 맨유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돈은 내야 한다.”
기억하기로는 맨유에 약 £12m, 린에 약 £4m이 지급됐습니다.
[폴 스콜스와 맞붙고 있는 미켈] / 사진: 출처 미상
2006년 저는 첼시에서 데뷔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순간이었고, 제게 엄청난 일이었어요. 다만 처음에는 제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레딩을 상대로 처음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전했는데 멍청한 옐로카드 두 장을 받고 퇴장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리고 순진했습니다. 실수도 했고, 팀 미팅에 늦기도 했어요.
배워야 했습니다. 무리뉴는 아주 빠르게 저를 다잡았습니다. 벌도 많이 받았고, 벌금도 많이 냈어요.
저를 몇 주, 어쩌면 한 달 정도 아카데미로 내려보냈다가 제가 이제 진짜 어른들의 무대에 있다는 걸 이해할 준비가 됐을 때 다시 불러올렸습니다. 여기는 첼시 풋볼 클럽이었습니다. 이제 나이지리아도 아니고 린 오슬로도 아니었어요.
이 구단의 문화를 배워야 했습니다. 존 테리, 디디에 드로그바, 무리뉴 같은 사람들이 제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줬습니다. 그 시즌이 끝날 무렵 저는 새 웸블리에서 열린 첫 FA컵 결승전에 출전했습니다.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습니다. 정말 엄청난 경기를 했어요. 폴 스콜스 같은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그날은 특별했습니다. 결승골에도 제가 관여했거든요. 제가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공을 살짝 연결했고, 드로그바가 프랭크 램파드에게 넘겼습니다.
램프스가 다시 돌려줬고, 그다음에는 디디에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했어요. 큰 경기에서 골을 넣고 우리에게 트로피를 안겨주는 것 말입니다.
[2009년 두 번째 FA컵 우승을 기뻐하는 미켈] / 사진: 출처 미상
그날 퍼기 앞에서 일부러 약 올렸다고까지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그에게 한 방 먹였다는 기분은 좋았어요! 저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 녀석을 놓쳤지?’
하지만 1년 뒤 모스크바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맨유가 우리를 꺾었습니다. 저는 벤치에 있었어요. 선발로 뛰지도 못했고 교체로도 들어가지 못해 정말 실망했습니다.
앉아서 생각했어요.
‘세상에, 저게 내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갔다면 지금 챔피언스리그 우승자가 됐겠구나.’
제가 그 경기에 뛰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망감을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2012년 우리는 다시 결승에 올랐습니다.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이었죠. 그 몇 년 동안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팀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2012년 결승에 올랐을 때는 JT, 램프스, 페트르 체흐, 드로그바 같은 선수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다들 머지않아 팀을 떠나게 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 선수들에게,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그 트로피를 안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는 우리에게 집착이 돼 있었습니다.
[2010년 8월 프리미어리그 트로피와 FA컵을 들고 포즈를 취한 미켈] / 사진: Chelsea FC via Getty Images
그 결승전 전날 밤 팀 미팅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모든 선수에게 가족이 응원의 말을 담아 찍은 영상이 전달됐어요. 구단에 정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 가족을 찾아내 영상을 찍도록 해준 거잖아요. 정말 특별했습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엄청난 일을 해냈어요.
그 미팅에서 나온 뒤 우리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내일은 절대로 질 수 없다.’
그 경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무대였습니다. ‘언제 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경기는 첼시 유니폼을 입고 치른 제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정말 잘했어요. 디디에 드로그바가 동점골을 넣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페널티킥까지 성공하기 전까지는 제가 우리 팀의 경기 최우수선수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제가 얼마나 우승을 원했는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간절했는지가 경기력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최초의 런던 구단이 됐습니다. 결국 저는 첼시에서 372경기를 뛰었고, 팬들과의 관계도 지금까지 특별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회를 만들고 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주목받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 포지션 자체가 그런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면서 포백을 보호해야 했어요.
우리는 하프라인을 넘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무리뉴가 터치라인에서 소리쳤거든요.
주제 무리뉴
“어디 가는 거야?!”
지금은 로드리나 라이언 흐라벤베르흐가 거침없이 전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로드리가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는 사실은 이 포지션이 얼마나 진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퍼거슨 경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인사를 건네자 그가 말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경
“오, 여기 있네. 내가 놓친 그 녀석!”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알렉스 퍼거슨 경
“이제 너한테 화 안 났어. 다 지난 일이야.”
제가 물었습니다.
존 오비 미켈
“보스, 이제 저 용서하신 겁니까?”
그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 퍼기가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요! 저는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서 첼시로 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왕조를 만들었고,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10대였던 저는 두 거대한 구단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저는 첼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미켈은 스트리밍 플랫폼 DAZN과 함께 FourFourTwo와 인터뷰했다.
크리스 플래너건
2026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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