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기하게 생긴 도시
이곳은 1937년에 계획도시로 건설된 중국의 ‘터커스‘라는 도시인데, 모양 때문에 ’팔괘성‘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 도시는 ‘중국 신강위구르자치구 이리카자흐자치주 터커스현(지도의 분홍색 영역)의 현청 소재지인 ’터커스진’이다.
현 인구는 15만명이고, 지도상으로는 개 작은 변방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면적은 전북과 비슷한데;;;
근데 저 도시가 어쩌다 생기게 됐냐면
원래 터커스현청은 위 사진의 ‘활보촌‘에 있었는데 1937년 이리를 다스리던 ‘구종준‘이라는 국민당 군인은 활보촌이 ‘도시 확장이 어려워 현청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현청 행정도시 팔괘성을 만들었다.
도교 정신을 담아 계획하여 팔괘 모양이 되었고, 당시 신강을 후원하던 소련의 지원을 받아 건설했다.
그래서 모양은 동양적이지만, 도시계획과 건물은 러시아스럽다.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리주에서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도시다
구종준은 팔괘성의 건설자로 역사에 남았으나,
그거 빼면 부정부패한 탐관오리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이 양반의 사위는 당시 신강을 지배했던 군벌 성스차이.
성스차이 집안은 당시 군벌들 중에서도 부정부패로 유명했다.
본인의 근거지는 심양이었으나, 만주사변을 계기로 사위가 있는 신강으로 이사가 그곳에서 이리를 다스렸다.
성스차이는 최대 후원자 소련이 독소전쟁에서 밀리자 바로 배신을 때리고 신강 공산당원을 대거 처형한다.
그러다 소련이 승기를 잡자 아무일 없었던 척 관계개선을 시도했다가 손절당하고 신강에서 권력을 잃는다.
1944년 장제스는 성스차이의 권력을 축소하기 위해 그를 농림부장으로 임명하고 충칭으로 불러들이고 이로써 신강에서 그의 권세는 막을 내리고 구종준 등 성스차이 처가 집안 사람들은 란저우로 이주한다.
1949년, 란저우 국민당이 대만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던 시기에 성스차이의 처가 집안 11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과거 성스차이 치세에 학살당한 신강 주민들의 유족들이었으며, 이들은 ‘신강 동포들의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ㅊㅊ








이곳은 1937년에 계획도시로 건설된 중국의 ‘터커스‘라는 도시인데, 모양 때문에 ’팔괘성‘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 도시는 ‘중국 신강위구르자치구 이리카자흐자치주 터커스현(지도의 분홍색 영역)의 현청 소재지인 ’터커스진’이다.
현 인구는 15만명이고, 지도상으로는 개 작은 변방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면적은 전북과 비슷한데;;;
근데 저 도시가 어쩌다 생기게 됐냐면
원래 터커스현청은 위 사진의 ‘활보촌‘에 있었는데 1937년 이리를 다스리던 ‘구종준‘이라는 국민당 군인은 활보촌이 ‘도시 확장이 어려워 현청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현청 행정도시 팔괘성을 만들었다.
도교 정신을 담아 계획하여 팔괘 모양이 되었고, 당시 신강을 후원하던 소련의 지원을 받아 건설했다.
그래서 모양은 동양적이지만, 도시계획과 건물은 러시아스럽다.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리주에서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도시다
구종준은 팔괘성의 건설자로 역사에 남았으나,
그거 빼면 부정부패한 탐관오리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이 양반의 사위는 당시 신강을 지배했던 군벌 성스차이.
성스차이 집안은 당시 군벌들 중에서도 부정부패로 유명했다.
본인의 근거지는 심양이었으나, 만주사변을 계기로 사위가 있는 신강으로 이사가 그곳에서 이리를 다스렸다.
성스차이는 최대 후원자 소련이 독소전쟁에서 밀리자 바로 배신을 때리고 신강 공산당원을 대거 처형한다.
그러다 소련이 승기를 잡자 아무일 없었던 척 관계개선을 시도했다가 손절당하고 신강에서 권력을 잃는다.
1944년 장제스는 성스차이의 권력을 축소하기 위해 그를 농림부장으로 임명하고 충칭으로 불러들이고 이로써 신강에서 그의 권세는 막을 내리고 구종준 등 성스차이 처가 집안 사람들은 란저우로 이주한다.
1949년, 란저우 국민당이 대만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던 시기에 성스차이의 처가 집안 11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과거 성스차이 치세에 학살당한 신강 주민들의 유족들이었으며, 이들은 ‘신강 동포들의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ㅊ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