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제국과 아랍

눈팅족입니다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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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과
고대 아랍인의 관계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해
사실 시리아와 아라비아 사막 가장 자리의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유목 집단이
'아랍'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서 사료에 등장한 것은
카르카르 전투에 대한 아시리아의 기록에서야...
아시리아의 서진에 맞서 12명의 왕이 연합하였던 고대의 세계 대전 카르카르 전투에서
아람, 이스라엘, 암몬 등과 함께 아랍도 병력을 파견했는데
아랍의 왕 긴디부는 1000명의 낙타 부대를 동원하였지
* 아시리아의 샬마네세르 3세는 카르카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아시리아의 서진은 그 전투의 결과로 한 세기 이상 미뤄졌으므로 아시리아의 패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야...
아랍은 이후 낙타를 가축으로 기르며 사막의 교역로를 오가고 사막 지역에서 점점 유프라테스강 중류 지역과 메소포티미아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가는 집단으로 메소포타미아 문서에 언급되는데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아랍인 여왕들(자비베와 샴시)이 조공한 것을 기록하여
고대 아랍에서 여왕이 활동하였음을 알려주기도 해
사르곤 왕조 시대 아시리아의 왕들은 이동성이 높아 특정 지역의 통제가 어려운 아랍계 유목민과 조약을 맺어 우호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물론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무력이 동원되는 경우들도 있었어
대표적으로 아슈르바니팔과 아랍의 관계를 살펴 보면
아슈르바니팔은 '형제 전쟁' 즉 바빌로니아의 왕인 동생 샤마시 슘 우킨과 전쟁에 앞서 종주권 조약을 어긴 아랍의 케다르(게달)족 수장들을 상대로 징벌 원정을 수행했고
'반란자들'을 물리친 뒤 아비야테를 케다르인 지도자로 세웠는데
바로 그 아비야테가 아시리아와의 조약을 파기하고
아슈르바니팔과 샤마시 슘 우킨의 전쟁에서
샤마시 슘 우킨의 편을 들었지...
이 아비야테는 바빌론에서 샤마시 슘 우킨과 같이 포위되었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아슈르바니팔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아슈르바니팔은 아시리아 왕의 이미지 답지 않게 그리고 아시리아 왕 중에서도 유독 잔혹했던 그의 이미지에 맞지 않게
아비야테를 용서하는 결정을 내렸어
이는 그만큼 아시리아의 입장에서 아랍인들에 대한 정책이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는 증거일 텐데
아비야테와 그 동생 암무는 '형제 전쟁' 후에도 아시리아에 도전하여
국경의 교역로를 위협하였고
이는 아시리아가 군대를 일으키게 하였는데
물이 부족한 사막 지역을 헤치고 들어가 아랍계 여러 부족을 쳐부순
아시리아는 니네베에서 '반란 주모자'들을 처형하였지
이 원정은 상당히 잔혹했고 아랍은 이때 많은 인구의 감소를 겪어야 했지만
이 사건이 아시리아와 아랍계 여러 부족과 아시리아의 항쟁에 마침표를 찍었는지 여부는
아슈르바니팔 치세 후반의 자료 부족으로 확실하지 않으므로 참고 요
* 아슈르바니팔의 아버지 에살핫돈 또한 자신이 지지하였던 아랍인 지도자 우아테의 반란을 진압해야 했는데, 이 역시 아시리아의 입장에서 아랍 문제를 다루는 것이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야...
아시리아인들
그리고 아랍인들의 이야기
흥미로웠기를 바라
* 글을 마칩니다.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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