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동그란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향년 89세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하는데, 미술계는
물론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추모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중이야.
호크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그 탈색한 금발 머리와 지적인 느낌을 주는
안경이잖아. 1960년대 영국과 미국 사교계를 주름잡던 시절부터 이 독보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패션 아이콘으로도 불렸던 인물이야. 사실 그는 영국 북부 공업도시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넷째였다고 해.
스무 살 때 처음 판 그림 가격이 고작 10파운드,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믿기지 않는 금액이지. 그로부터 61년 뒤에 그의 작품 한 점이 무려
1374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으니 그야말로 예술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어.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이나 '예술가의 초상' 같은 그림들은 지금 봐도 세련된
감각이 느껴져서 놀라워.
학창 시절에는 꽤나 고집 있는 문제아였다는 에피소드도 유명하더라고. 런던 왕립예술대학
시절에 여성 모델을 그리라는 학교의 과제를 거부하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담아 근육질
남성들을 그렸던 일화가 있어. 졸업 논문도 화가는 그림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며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는데, 학교 측에서 이 천재를 졸업시키려고 규정까지 바꿨다니 대단하지 않아?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췄던 봉쇄 기간 중에도 쉬지 않고 '노르망디에서의 한
해'라는 대작을 남기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어. 작년에는 그의 고향인 브래드포드에서
호크니를 헌정하는 대규모 드론 쇼가 열릴 정도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화가야.
늘 동그란 안경 너머로 세상을 남다르게 바라봤던 거장의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감각과 작품들은 앞으로도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줄 게 분명해 보여.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던 그가 하늘에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려나가길 응원하게 돼.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향년 89세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하는데, 미술계는
물론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추모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중이야.

호크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그 탈색한 금발 머리와 지적인 느낌을 주는
안경이잖아. 1960년대 영국과 미국 사교계를 주름잡던 시절부터 이 독보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패션 아이콘으로도 불렸던 인물이야. 사실 그는 영국 북부 공업도시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넷째였다고 해.

스무 살 때 처음 판 그림 가격이 고작 10파운드,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믿기지 않는 금액이지. 그로부터 61년 뒤에 그의 작품 한 점이 무려
1374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으니 그야말로 예술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어.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이나 '예술가의 초상' 같은 그림들은 지금 봐도 세련된
감각이 느껴져서 놀라워.

학창 시절에는 꽤나 고집 있는 문제아였다는 에피소드도 유명하더라고. 런던 왕립예술대학
시절에 여성 모델을 그리라는 학교의 과제를 거부하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담아 근육질
남성들을 그렸던 일화가 있어. 졸업 논문도 화가는 그림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며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는데, 학교 측에서 이 천재를 졸업시키려고 규정까지 바꿨다니 대단하지 않아?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췄던 봉쇄 기간 중에도 쉬지 않고 '노르망디에서의 한
해'라는 대작을 남기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어. 작년에는 그의 고향인 브래드포드에서
호크니를 헌정하는 대규모 드론 쇼가 열릴 정도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화가야.

늘 동그란 안경 너머로 세상을 남다르게 바라봤던 거장의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감각과 작품들은 앞으로도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줄 게 분명해 보여.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던 그가 하늘에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려나가길 응원하게 돼.
